최운열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최근 2기 경제팀을 출범시키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제를 살려 달라’ 하셨지요. 국민들 입장에서는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기에 가라앉고 있는 경제를 살리시겠다는 대통령의 절박한 호소에 많은 공감을 하리라 생각되어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경제문제에 관하여 진언을 드릴까 합니다.
우리 경제는 이제 겨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 달러를 갓 넘어 앞으로 갈 길이 멀고 계속 성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성장 패러다임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과거 1970, 80년대 추구했던 무조건적인 양적 성장이 가능할까요. 지속 가능한 우리 경제성장을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파수꾼이라 자타가 공인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OECD는 최근 ‘소득 분배와 빈곤’ 보고서에서 지난 30년간 선진국에서 소득 불균형이 심해져 조세제도 개혁을 주문했고, IMF보고서는 불균형을 외면하면 결국 성장을 낮추고 성장의 지속성을 떨어뜨릴 것이라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아시아 각국의 분배 악화가 지속되면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가계,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득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새겨들어야 할 지적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난 대선 때 경제민주화 공약을 하셨다고 믿고 그 혜안에 많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성장이 중요하지 무슨 경제민주화냐’는 많은 비판을 감수하면서 끝까지 공약을 고수하셨기에, 당선 후 반드시 실천하시리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양적 성장 논리에 함몰되어 경제민주화 공약은 서서히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 같습니다. 과연 경제민주화가 성장의 걸림돌일까요. 이 시점에서 왜 경제민주화가 한국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지 말씀드릴까 합니다.
기억하기도 싫은 세월호 참사, 지하철 사고, 각종 대형 화재 등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됩니다. 왜 20년이 지난 이 시점에 비슷한 사고가 반복될까요. 성장 제일주의가 부른 참사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국민들은 더 이상 이런 유형의 성장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이제 삶의 질이 개선될 성장을 원합니다. 그것이 성장 패러다임의 변화입니다. 제2기 경제팀이 추구하고 있는 정책의 툴(tool)이 20, 30년 전 성장 패러다임에 맞는 정책이라면 효과도 없을 뿐 아니라 부작용만 나타날 위험이 있을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는 1950년부터 70년까지 일본 경제를 연구해 소득수준이 올라간다고 반드시 국민 삶의 행복지수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이스털린 역설’(Easterlin Paradox)을 발표하였습니다. 네덜란드 에라무스대학 빈 로빈 교수는 그 변곡점이 1인당 GDP가 2만 달러일 때라고 입증했습니다. 즉 소득이 2만 달러가 될 때까지는 소득이 증가하면 국민의 행복수준이 증가하지만 소득이 2만 달러가 넘어가면 소득의 증가와 행복 수준의 상승이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89년 1인당 GDP가 5000달러를 넘어섰고 1995년 1만 달러, 2004년 1만5000달러, 그리고 2007년 2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위 이론에 의하면 우리 국민들은 2007년 이전까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양적 성장만 해도 성장의 과실에 만족했지만 그 이후에는 삶의 질에 관심을 갖게 된 셈입니다. 국민 의식의 변화가 여론조사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한국소비자리서치가 1997년 국민을 상대로 ‘최우선 국가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경제강국 진입’이라 응답한 사람이 46%를 차지했습니다. 2011년 엠브레인이 비슷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을 때 국민의 57%가 ‘삶의 질 개선’이라 답했고, ‘경제강국 진입’은 25%에 머물렀습니다.
우리 국민들 의식 수준도 높아져 1970, 80년대 성장 패러다임에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21세기 성장 패러다임에 맞는 경제정책을 펼쳐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