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원 증액도 100번 생각하는 ‘방어전’… 지자체 공무원 공략엔 통계로 재설득
내년 정부 예산안을 짜기 시작하는 6월부터 확정되는 9월까지 90일간 170여명의 예산실 공무원의 주말은 고스란히 반납된다.
이들은 줄잡아 수천명의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을 응대하고 같이 숙의해야 한다. 정부 부처·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내년도 예산을 더 받아내고자 설득을 하면 예산실 직원들은 반대논리를 펴느라 바쁘다.
이 때문에 예산안을 짜는 작업은 한마디로 ‘전쟁’이다. 한 푼이라도 더 받아가려는 부처 및 지자체들과, 국비를 균형 있게 배분하려는 예산실이 치열한 기싸움을 벌인다.
특히 지난해는 수년간 세입과 세출 균형이 무너진데다 각종 경기부양 대책의 지원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예산실에선 말 그대로 1원도 100번은 생각하고 내보내야 했다.
이런 가운데 예산을 따내려는 쪽에서는 수시로 물밑 접촉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지자체가 다리를 놓으려고 예산을 받으려는 경우 실무자들은 기재부 국토교통예산과장과 담당 사무관을 밀착 마크한다. 간부들은 따로 장·차관, 예산실장에게 다가선다.
지자체의 예산 담당 공무원들은 기재부 예산실 공무원들의 고향·출신학교를 중심으로 친구나 친척을 동원해 줄을 대는 ‘맞춤형 로비’도 한다. 하지만 친분이 있어 예산을 주려고 하더라도 심의 과정에서 예산 편성 원칙에 맞지 않는 사업이면 걸러지게 된다.
지자체가 정부 부처와 함께 설득하는 때도 있다.
도로를 새로 만들려고 한다면 국토교통부 공무원들과 해당 지역의 지자체 공무원들이 각자 예산실 공략에 나선다. 원칙에 맞지 않는 사업에 대해 예산 반영을 거절하면 지자체의 예산담당자들도 서운해하기보다는 프로답게 논리나 통계를 보강해서 다시 설득하러 온다.
이런 밀고 당기기를 거쳐 정부는 지난해 9월에도 376조원 규모의 2015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예산실이 마련하는 각종 예산 대책이 국회에 제출된다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니다.
청와대와 당(새누리당)의 협의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당·정·청 협의체가 운영되는 배경이다. 여기에 야당의 의견까지 들어 이를 반영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11월 말 정치권 등에 따르면 현재 여의도에 대기중인 예산실 직원들은 전체 직원 3분의 2에 달하는 100여명으로 추산됐다.
대부분이 세종시에 살고 있지만 매일 국회로 출퇴근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아예 예산실 차원에서 주변 호텔을 통째로 빌려 2인 1실로 생활했다.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실상 예산실을 여의도로 옮겨온 셈이다.
예산실 직원들은 각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예산의 증액, 감액을 반복하면 실시간으로 이에 대한 적절성을 검토해야 한다. 정부 예산안을 만든 입장에서 일종의 ‘방어전’에 투입되는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등 고위직들이 회의장에서 의원들과 면대면 논리전을 벌일 때 회의장 밖에서 ‘대응 전략’을 바로바로 만드는 게 이들의 역할이다.
그 때문에 예산실이 막강한 힘을 갖고 있어 인기 있는 부서라는 바깥의 생각은 오해라고 설명한다. 업무 자체가 빡빡하고 잘해야 본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관들 사이에서는 업무가 고급스럽다는 국제금융이나 전문성이 두드러지는 세제실에 비해 예산실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진다.
예산안을 짜는 것 외에도 중기 재정계획을 만들어야 하고 대(對)국회 업무 등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예산실 직원들이 주말을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때는 연말과 연초 두 달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사실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