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분기 1.8조원 이익 내며 성공적 데뷔… 5개국어 기반 폭넓은 네트워크로 ‘2세 경영’ 합격
동종업계에서 먼저 업적을 이룬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이 돈과 신용이 오가는 금융권이라면 중압감은 더 심하다. 스페인 대형은행 산탄데르 은행의 아나 보틴 회장은 그러나 성공적으로 아버지 에밀리오 보틴 회장의 후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아나 보틴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주요 은행 가운데 첫 여성 회장이다.
아나 보틴은 금융권에 종사했던 아버지 에밀리오 보틴, 음악을 전공했던 어머니 팔로마 오셔 사이에서 여섯 자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냉정한 ‘금융’과 자유로운 ‘예술’의 유전자를 동시에 받은 셈이다. 아나 보틴의 어머니 팔로마는 피아니스트이자 스페인음악재단 설립자로도 유명하다.
아나 보틴은 미국 브린모어전문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치며 경제와 경영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탄탄히 쌓았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미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교육을 받아 자연스럽게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산탄데르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지사의 수보다 아나 보틴 개인적인 네트워크가 더 넓은 것도 이 언어 능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나 보틴은 1981년부터 7년간 JP모건에서 경력을 쌓고, 1988년에 본격적으로 산탄데르 은행에 합류했다. 산탄데르 은행의 자회사인 바네스토 은행을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운영하며 리더의 자질을 쌓았다. 그리고 2010년 회장에 부임하기 전까지 산탄데르 영국 지사장을 맡았다.
아버지의 경영 스타일을 지근거리에서 본 영향 때문일까. 아나 보틴은 취임 이후 첫 성적표를 웃으며 받을 수 있었다. 산탄데르 은행은 지난해 4분기 14억6000만 유로(약 1조8300억원)의 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8억6400만 유로)대비 69% 증가한 것. 부실대출을 줄여 이익을 크게 낼 수 있었다. 이번 실적으로 아나 보틴 회장은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산탄데르 은행은 세계적인 금융 전문지 유로머니가 이달에 선정한 아르헨티나, 칠레, 포르투갈의 ‘베스트프라이빗뱅크(Best Privat Bank)’에 뽑히는 등 좋은 평판도 얻었다.
아나 보틴은 업무에 있어선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일을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할 만큼 커리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인물이다. 그러나 회장이라는 명함을 벗어 던지면 영락없는 세 아이의 엄마로 돌아간다. 바네스토 은행을 운영했을 당시 오후 7시 이후 회의는 하지 않았는데, 이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1973년과 1974년 스페인주니어골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만큼 골프 실력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