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꽃들 문화부 기자
최근 KBS 2TV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순옥(김혜자)은 남편 철희(이순재)가 사랑한 여자 장모란(장미희)을 곁에 두고, 미묘한 애증의 감정으로 관계를 펼친다. 김혜자는 희로애락을 선보이는 가운데, 결코 진부하지 않은 그녀만의 분위기로 압도한다. 2일 방송된 12회 말미에서도 가감 없이 드러났다.
죽었던 남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그녀는 “잡귀야 물러가라”고 격앙돼 소리치며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귀신이라도 나타난 듯 충격에 빠진 순옥은 결국 철희에게 소금을 뿌려댄 것이다. 남편과 빼닮은 사람을 갑작스럽게 마주친 데 대한 놀람, 정말 남편일지도 모른다는 직감, 바람을 핀 그에게 품어왔던 분노가 고스란히 김혜자의 변화하는 표정 안에 담겼다. 순옥은 한 인간으로서 포장하지 않은 본연의 감정으로 마주했다. 그 날것의 감정으로 무장한 김혜자의 연기는 2분여의 짤막한 신에서 짙은 밑바닥의 감정을 훑어냈다. 입체적 계기를 맞는 중요한 신에서 김혜자는 차곡차곡 쌓아온 극중 관계와 갈등의 전말을 완성도 높은 연기로 터뜨렸다.
1963년 KBS 탤런트 1기로 데뷔해 연기 인생 50년을 넘긴 김혜자는 국민배우로 불린다. 그녀는 빛나는 이력을 넘어서서 끊임없이 갈고 닦는 자세로 연기에 임해왔기에 그 수식어를 지켰다. 채시라, 도지원, 이하나 등은 김혜자의 치열한 대본 연구를 언급하며 놀라움을 드러낸 바 있다.
도전정신도 그녀의 연기 호평을 이끈 요인이다. 김혜자는 지난해 6년 만에 연극 무대에 도전해 1인 11역을 연기했다. ‘오스카 신에게 보낸 편지’의 함영준 연출가는 “첫 연습 때는 15분만 해도 힘들어하셨지만, 점점 2시간, 3시간 늘어나더니 어느 날은 6시간도 연습하셨다”고 밝혔다. 이처럼 자신만의 해석력과 치열한 연습을 바탕으로 고유의 연기를 펼치는 김혜자다. 대체할 수 없는 연기, 감히 모방할 수 없는 저력으로 시청자를 웃고 울리는 그녀에 어울리는 새로운 수식어, ‘갓(God) 혜자’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