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계의 거장 장태산, 웹툰 <몽홀>로 돌아오다
※만화계의 거장 장태산이 웹툰 <몽홀>로 돌아왔다. <스카이 레슬러>, <야수라 불리운 사나이> 등 굵직한 작품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 만화가 장태산 그가 맞다. 말이 필요 없다. 지난 1월 연재를 시작한 이후 반응이 뜨겁다. 어린 독자들은 그런다. 내가 어려서 모르겠지만 그림을 보니 대단한 사람인 것은 알겠다고. <편집자 주>
“선생님, 이거 배경 다 안 그리셔도 돼요.”
포털사이트의 웹툰을 담당하는 젊은 직원의 눈에 만화가 장태산은 괴짜다. 컴퓨터 조작 몇 번으로 만화 한 컷의 배경을 처리할 수도 있는 일을 일일이 수작업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작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후배들에게 배웠다. 그러나 그냥 그것이 40년 동안 우직하게 만화책을 만들어 온 그만의 방식이다. 베테랑 만화가인 그가 포털 사이트 직원에게 대답한다.
“내가 밥 지어 보니까 가스보단 장작으로 밥 짓는 게 더 맛있더라고.”
그래서인지 장태산의 첫 웹툰 데뷔작 <몽홀>은 다른 웹툰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평이 많다. 스토리와 데생부터 캐릭터의 표정까지 옛 무협 만화책 보듯 섬세하고 날렵하다.
장씨는 자신을 ‘미련한 놈’이라고 표현한다. 평생 만화를 그리며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어 그렇게 그리면 될 일이지만, 여전히 자신이 하고자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다룬 웹툰 <몽홀>에도 이런 의지가 투영돼 있다. 인생의 반 이상 펜과 붓을 잡았던 만화가 장태산. 이제 그의 무기는 전자펜과 키보드다.
독자들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아 미련하다? 틀린 것 같다. 그 미련함에 대한 독자들의 대답은 환호와 찬사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만화책을 향수하기 시작했다.
◇ 도제식 만화책 vs 나홀로 웹툰
“어느 날 강풀이 그러더라고요. ‘제가 그림을 못 그려서 선생님들이 문하생으로 안 받아주신 덕분에 저만의 색깔을 가진 작가로 살아남은 것 같아요’라고 말이에요. 그 말에 아주 많이 공감합니다.”
장씨는 요즘의 웹툰 작가들이 순발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만화를 그리는 데 있어서 부족한 점은 최소화 하고, 장점은 부각시켜 작품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웹툰계의 현실도 한 몫 한다. 도제식으로 문하생들과 함께 팀을 꾸려 만화책을 냈던 옛날 방식은 스토리와 데생, 펜 터치 등이 분업화돼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반면에 혼자서 그 모든 것을 1주일 안에 토해내야 하는 웹툰 작가들에게는 단점을 일정 부분까지 끌어올리는 것보단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이 효율적이었던 것이다.
“저는 이게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죠. 김두호 선생님 밑에서 문하생으로 13년을 했고 그 방식 그대로 40년 동안 만화를 그렸으니까요. 만약 그림 실력이 떨어진다면 어떻게든 그것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했지. 근데 웹툰은 또 다르더라고요. 그림 실력이 떨어지더라도 남다른 공감 능력이나 스토리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탁월한 친구들이 많더군요. 생각해보니 우리 세대 만화가 들은 필요 이상으로 엄숙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 복수 등의 명제로만 작품을 다루려 했지. 근데 지금은 소재가 너무나 자유롭고 다양해요. 도제식 방식이 어쩌면 너무 우리를 획일적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 만화책 <몽홀>이 아닌 웹툰 <몽홀>
“예전에는 세상의 변화에 쉽게 따라갈 수 있었는데, 최근 10년의 변화는 너무 빨라 따라가기 힘들더라고요. 만화도 그래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독자층이 어리다는 것이죠. 근데 지금 어린애들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만화를 보더라고요. 만화책은 몰라도 웹툰은 안다는 것이죠.”
장씨의 웹툰 입성은 이러한 사회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사실 <몽홀>은 10년 전에 출판을 하려고 했다. 여러 출판사와 조율했지만 결렬의 연속이었다. 종이시장의 몰락으로 출판사는 장편보다는 단편으로 만들기를 원했지만, 장씨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버리면서까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즈음해서 그도 갈팡질팡했다. 작가로서 작품을 내지 못한다는 것은 그 생명력을 다했다는 방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것은 세월이었다. 정교한 작업을 필요로 하는 만화 작업에 노안(老眼)은 불편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필요한 곳을 확대해서 볼 수 있는 컴퓨터 작업은 그래서 안성맞춤이었다. 익숙하진 않았지만 편한 점도 많은 것이었다.
“컴퓨터 작업이 좋긴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기껏 다 그려놓고 하나 실수하면 종이를 찢어버렸어야 했는데, 이건 그냥 취소해버리면 되니까. 근데 그런 건 있지. 손맛이 약간 떨어진다는 거?”
◇ 창녀를 취재한 이야기
그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퀴퀴한 담배 냄새와 연기가 방 안 곳곳에 가득하다. 그 연기와 냄새를 오랫동안 머금은 빛바랜 사진과 책들은 한곳에서 오래 끓여진 사골처럼 장태산의 만화에 깊은 맛을 내주고 있다. 어떤 만화가나 그렇겠지만 책이든 신문이든 사진이든 직·간접적인 사건들은 작품에 중요한 재료가 된다. 그래도 역시 그중의 으뜸은 오감을 이용한 취재다.
“<도시의 이력서>시리즈는 나중에라도 꼭 완성하고 싶습니다. 성인 단편 만화였는데 그것을 위해 창녀와 깡패를 직접 만나 취재한 적이 있었죠.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이야기를 드러내보고 싶었거든요.”
그녀들은 장태산을 쫓아내기 일쑤였다.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같이 술 마시고 만나서 회유하기를 여러 차례. 마침내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것만 해주면 내 모든 것을 말해주겠다고 하면서.
“차 한 잔 마시고, 밥 같이 먹고, 영화 보면서 데이트하는 것이 꿈이라고 하더라고요. 까짓 것 어려운 것 아니니까 함께 했죠. 그때 생각했습니다. ‘이들도 똑같은 사람이구나.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고요. 정말 인생 공부 많이 했던 시기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꾸준히 책을 읽고, 사회를 탐구하는 것은 작품에 독자들이 생각해 볼 만한 화두를 던지기 위해서다. <몽홀>도 그렇다. 표면적으로는 칭기즈칸의 일대기지만, 그 안의 메시지는 읽는 독자, 그리고 인간들을 향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