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이 단기간 급증하면서 부실대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어려운 경기 여건에서 중소기업에 자금 공급을 늘리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당국의 눈치를 보면서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대출을 늘리는 경향이 강해 '좀비기업' 양산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돈 벌어 이자 못 갚는 기업 증가
22일 금융권과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경기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증가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의 '2014년 3분기 상장기업 경영분석'을 보면 이자보상비율이 100%에 미달하는 기업 비중은 30.5%로 전년 동기(29.5%)보다 상승했다.
이자보상비율은 영업이익을 금융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이 비율이 100%를 밑돈다는 것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국내 주요 수출기업 159개사의 경영실적을 조사한 '2014년 수출기업과 내수기업의 경영지표 비교분석' 보고서에서도 조사대상 기업의 평균 이자보상비율은 1천41.6%로 전년(1천387.2%)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다.
금융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기업의 여력이 더 약화했다는 의미다.
금융권에서도 건설, 조선, 해운, 철강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올해 들어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올해의 금융 7대 트렌드' 중 하나로 '기업구조조정 본격화'를 꼽으면서 건설, 조선, 해운, 철강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지언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기업부분 건전성 분석을 통한 금융 안정성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부실기업(부도확률 0.4% 이상) 비중이 2010년 7%에서 2014년 27%로 급격히 상승했다며 이런 경고를 뒷받침했다.
거시 통계로 볼 때도 기업의 부도 위험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모뉴엘 등 부실기업 악재가 터지면서 지난해 3분기 1조7천억원이던 은행권 당기순이익은 4분기 8천억원으로 반토막이 나기도 했다.
올 들어서도 경남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작년과 같은 상황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남기업에 대한 은행권 위험노출 채권액은 1조원에 달한다.'
◇ 정부 압박에 '울며 겨자먹기' 대출…부실화 우려
문제는 이런 경제여건 속에서 은행권이 반강제적으로 중소기업 대출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522조2천억원으로 작년 말(506조9천억원)보다 15조4천억원 늘었다.
이 같은 증가폭은 2008년 2분기 중소기업 대출이 19조3천억원 증가한 이후 약 7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중소기업 대출이 이처럼 급격히 늘어난 것은 금융당국이 창조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기술금융을 장려하면서 지원실적에 따라 은행별로 순위를 매겨 공개하는 등 '줄세우기'를 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술금융 실적을 은행 혁신성 평가에도 반영하면서 실적압박을 받은 은행들이 단기간에 대출을 늘리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월 혁신성 평가에서 시중은행 8곳 중 6위를 한 국민은행은 작년 12월 말 4천500억원 수준이던 은행 자율 기술신용대출 잔액을 올해 3월 말 기준 2조7천500억원으로 불과 3개월 사이 6배로 늘렸다.
이에 따라 은행 자율 기술신용대출 실적은 작년 말 6위에서 올해 3월 1위로 올라섰다.
반면에 혁신성 평가에서 시중은행 1위를 한 신한은행은 같은 기간에 은행 자율 기술신용대출 잔액이 30% 증가(1조7360억원→2조2천700억원)하는 데 그쳤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혁신성 평가 항목에 기술금융 실적을 반영하기 때문에 이를 챙기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기술금융 실적을 은행평가와 연계함에 따른 부작용 문제는 지난달 임종룡 금융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새누리당 이운룡 의원은 당시 청문회에서 "어려운 중소기업에 자금 공급을 해준다는 것은 찬성하지만 당국 눈치 보느라 금융회사들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하는 대출은 좀비기업 양산 등 사회적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은행이 실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는 대출 기업에 대한 제대로 된 선별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에 대한 신용리스크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지원이 이뤄진다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자금이 한계기업에 흘러갈 수 있는 만큼 철저히 심사를 거쳐 자금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