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삼킨 ‘성완종 블랙홀’ 어디까지 가나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이 죽으면서 남긴 유류품 메모에 기록된 리스트가 정치권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특히 성 전 회장이 사망 직전 경향신문과 가진 전화 인터뷰를 통해 정계의 거물들에게 금품을 줬다고 폭로하면서 이 사건은 큰 파장을 불렀다.
국정 운영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2012년 대선 당시 3000만원을 받았다는 주장을 통해 최단시간에 불명예 사퇴를 하게 됐다. 당장 총리 공백도 문제지만 새로운 인물을 찾아 인사청문회 등을 거치는 문제도 이 정권에서는 만만치 않은 숙제가 된 만큼 부담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27일 발표한 정례조사 결과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33.6%로 19대 국회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의 경우 전주보다 1.4%포인트 떨어진 36.8%에 그치며 3주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때문에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공무원연금 개혁과 노동시장 개혁안 등의 정책의 시행에도 힘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성완종 리스트 파장, 어디까지 가나 = 여권을 중심으로 여의도는 성완종 리스트 사태로 패닉에 빠졌다. 여야는 매일 이 문제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초반 야당의 일방적인 공세에서 절박해진 여당이 성완종 특별사면 카드를 ‘발굴’하면서 맞받아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의 28일 대국민 메시지가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형국을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성완종 사태로 인한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동시에 성완종 특별사면에 대해서 강력한 수사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성완종씨에 대한 연이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법치를 훼손하고 궁극적으로 나라 경제도 어지럽히면서 결국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주게 됐다”고 말했다.
여당도 대통령의 강한 의지에 공조 자세를 취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적절하지 못했던 사면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이에 대한 국민적 의혹도 빨리 해소돼야 한다”면서 “이 내용을 아는 사람이 국민 앞에 오늘이라도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연유로 사면했는지 밝히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새정치연합은 ‘진정성 없는 대독 사과’라며 반발했다. 문재인 대표는 “대통령 자신이 몸통이고 자신이 수혜자”라며 “최고 측근 실세들의 불법 정치자금, 불법 경선자금, 불법 대선자금 수수에 관해서 분명하게 사과해야 마땅하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당과 청와대의 역공세와 이에 대한 야권의 재반격은 4·29 재보선 이후 상황을 ‘강대강’으로 치닫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이투데이와 통화에서 “검찰 수사과정에서 추가적인 물증이 나오는가 여부가 연동돼 있어서 이 사안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기한을 예상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면서도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야당이 선거 결과를 떠나서 맞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전개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성완종 사건이 총선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신율 명지대학교 교수는 이투데이와 통화에서 “재보선까지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이완구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 소환문제로 5월 둘째 주까지 얘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그 이후에는 얘기가 안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선(先) 검찰수사, 후(後) 특검’… 합의까지 첩첩산중 = 성완종 사태는 검찰 수사 이후에 특검으로 넘어가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특검은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를 지켜본 후에 국민적 의혹이 남아있다면 여야가 합의해서 해야 할 것이고, 의혹이 남는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정치권으로 공을 돌렸다.
그러나 여야가 특검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며 대립하고 있어 또 다른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성완종 특검’을 현행 상설특검법을 따르지 않는 별도 방식으로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28일 기존의 ‘상설특검법’보다 수사인력을 대폭 확대하고 수사 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별도의 특검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법안에서는 특검보의 수를 5명으로 했으며, 특별수사관의 수는 45명으로 정했다. 상설특검법은 특검보 2명, 특별수사관 30명으로 규정돼 있다. 또 파견검사의 수는 15명, 검사를 제외한 파견 공무원의 수는 50명으로 상설특검법에서 규정한 파견검사 5명·파견공무원 30명보다 규모가 크다.
반면 ‘선제적 특검론’으로 주도권 잡기에 나선 새누리당은 야당의 주장에 반발하면서 합의된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검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우리는 여야가 합의한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검을 하자는 것이고, 야당이 이를 원하면 오늘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정부 시절 이뤄진 성 전 회장의 특별사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쟁점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편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대해 다수의 국민들은 검찰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참여연대가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의원과 함께 우리리서치에 의뢰해 25∼26일 성인남녀 1000명에게 설문한 결과, 전체의 53.5%가 ‘정권 실세가 연루돼 있어 제대로 수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성역없는 수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응답은 36.6%였으며, 모르겠다는 응답은 9.9%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