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배우 손현주입니다. ‘악의 연대기’를 통해 스릴러 영화에 두 번째 도전했습니다. 앞서 영화 ‘숨바꼭질’에서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악의 연대기’는 이와 분명히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지요. 저는 백운학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를 재밌게 봤습니다. 화려한 액션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인물의 심리 구도가 여타 작품과 달랐지요. 대부분의 영화가 명확한 선과 악에 젖어 있는 데에 반해 ‘악의 연대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만들기 까다로운 장르였지요.
극중 제가 맡은 최창식 반장은 특진을 앞두고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더 큰 죄를 짓게 되는 형사입니다. 후배이자 동료인 오형사, 차동재가 주변에 있지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어요. 실제로 이를 연기한 마동석, 박서준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촬영하면서 숙소에서 도 닦는다는 심정으로 유배생활과 다름없이 지냈습니다. 그만큼 인물의 감정선과 내면 갈등을 표현하기 위해 주력한 영화였습니다.
백운학 감독의 디렉션(Direction)은 무척 예민할 정도로 꼼꼼하고 섬세했습니다. 영화를 본인의 시나리오보다 어떻게 더 재미있게 만들까 고민해야 했을테니까요. 심리 연기에 대한 주문도 많았지요. 때로는 카메라가 몹시 밀착돼 ‘좀 떨어져 줬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소비가 훨씬 고통이 컸답니다. 숨 쉬어도 숨 쉬는 게 아니라고나 할까요. (감독이) 디렉션은 날카롭게 주시는데, 그걸 풀어내는 건 제 몫이니까요. 괴롭고 힘들지요. 100%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동안 주로 안방극장에서 시청자와 만났습니다. 1990년대부터 드라마를 많이 했는데, 영화 촬영과는 분명히 다른 차이점을 지녔지요. 요즘 현장에는 쪽대본이 많습니다. 누가 빠르게 캐치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반면 영화의 경우, 완성도를 높이기위해 노력을 많이 하지요. 순발력으로 따지자면 드라마가 훨씬 세답니다.
이번 영화에서 제가 연기한 최창식 반장은 소위 때가 묻은 인물입니다. 적당히 타락했고, 불의와 타협합니다. 그러나 이를 느끼지 못 하는 건 잘못된 일입니다. 실제 저는 되도록이면 안 그러려고 합니다. 삶의 때는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때를 때라고 인정하지 않고, 은폐하고 피하려고 하는데서 문제는 시작됩니다. ‘악의 연대기’는 대단히 예술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관객 열명 중 세명은 과거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인 저로서도 100% 만족은 없겠지만, 최선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그 외 많은 배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해내주었습니다. 죄 짓고 참회하는 기분입니다. 관객의 심판만이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