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와 미디어에서 가족을 읽다
KBS‘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송일국 세쌍둥이, 대한, 민국, 만세와 추성훈의 딸, 사랑이가 만두 등 음식을 왕성하게 먹는 것이 시청자의 눈길을 붙잡는다. 요즘 음식 먹는 장면을 내보내는 ‘먹방’이 인터넷 방송과 KBS, JTBC 등 지상파, 종편채널에서 인기가 높다. tvN ‘삼시세끼’에서 차승원의 요리 만들기가 폭발적 관심을 끈다. ‘쿡방(CooK+방송)’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그런데 먹방, 쿡방이 급변하는 가족 형태를 반영한 트렌드다. 산업구조 변화로 인한 1인 세대 급증과 이혼 등 가족해체로 인해 부모‧자식이 함께 사는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줄어들면서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며 정담을 나누는 식구(食口)가 감소했다. 급증하는 1인 세대와 해체된 가족이 TV의 먹방과 쿡방을 통해 식구 부재에서 초래되는 결핍을 채우고 대리만족을 얻는다. 이 때문에 먹방과 쿡방이 대중문화의 강력한 트렌드로 떠오른 것이다.
이처럼 미디어와 대중문화는 직간접적으로 오늘의 가족 모습을 담아낸다. 미디어와 대중문화를 보면 과거와 다른 오늘의 가족 형태와 가족 구성원 역할을 읽을 수 있다. 특히 가족이 주요 소재이자 주제로 활용되는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 인터넷 콘텐츠 등은 시대와 산업구조, 사회 시스템, 수명 연장에 따라 변화하는 가족의 형태와 가족 구성원의 위상과 역할이 잘 투영되는 텍스트다. 또한, 대중문화와 미디어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족의 형태나 구성원 역할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미디어와 대중문화 속에 비친 오늘의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가족의 기원’ 에서 밝혔듯 가족은 능동적이다. 가족은 결코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보다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발전함에 따라 보다 낮은 형태로부터 보다 높은 형태로 발전한다. 가족은 사회, 경제적 토대에 의해 규정되면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엥겔스의 지적처럼 우리의 가족 역시 형태에서부터 구성원의 역할, 가족을 구성하는 과정과 원인 등이 급변했고 그 변화는 오롯이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담보된다.
가족 양태와 갈등, 사랑을 다루며 최근 막을 내린 KBS ‘당신만이 내사랑’ , MBC ‘압구정 백야’ ‘전설의 마녀’ ‘장미빛 연인들’, SBS ‘내마음 반짝 반짝’에는 이전과 다른 변화된 가족의 형태가 드러난다. 물론 요즘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여자를 울려’ ‘파랑새의 집’등도 현재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가족해체와 전통적 가족구성과 다른 가정을 보여준다.
조부모-부모-자녀로 이어지는 3세대가 함께 사는 전통적인 가족 그리고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사는 일반적인 가족 형태는 급감하고 대신 한 부모와 자녀가 가족을 이루는 미혼모 가족, 싱글 맘 가족, 싱글 대디 가족, 그리고 1인 가구가 급증했다. 이혼, 사고 등 가족 해체 원인의 증가, 근무환경과 주거구조의 변화,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심화와 경기침체, 수명연장 등으로 인해 1인 세대 가족과 2인 세대 가족이 급증했다. 가족의 극소화(極小化‧minimalization)로 치닫고 있는 현실의 상황은 아내가 집을 나가 아버지가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싱글 대디의 모습을 담은 KBS 일일극 ‘당신만이 내 사랑’, MBC주말극 ‘장미빛 연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드라마와 ‘오늘의 연애’‘7번방의 선물’등 적지 않은 영화들에서 잘 나타난다. 또한, 미혼이거나 돌싱 연예인의 생활을 보여주는‘나 혼자 산다’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급증하는 1인 세대의 트렌드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전통적으로 결혼과 혈연을 기반으로 한 가족에서 벗어나 입양, 필요와 사회적 관계에 의해 구성되는 가족이 크게 늘었다. 입양가족, 대안가족, 유사가족의 형태가 최근 들어 드라마를 비롯한 대중문화 텍스트 속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MBC 주말극 ‘전설의 마녀’에선 교도소에서 만난 4명의 여성이 어머니와 딸로 서로 의지하며 한 가족을 구성해 사는 모습이 그려졌으며 SBS‘떴다, 패밀리’에선 입양 가족이 전면에 내세워졌다.
KBS‘이웃집 찰스’, EBS ‘고부열전’, JTBC ‘비정상 회담’등에서 보여 지는 것처럼 최근 들어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다문화 가족의 출연도 빈발하고 있다. 국내거주 외국인이 157만 명에 달하고 국제결혼도 크게 늘면서 다문화 가족이 많아졌다. 드라마 ‘산 너머 남촌에는’‘당신만이 내사랑’부터 영화 ‘완득이’‘마이 리틀 히어로’까지 다양한 작품 속에 다문화 가족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성애와 이성 결혼을 기반으로 한 획일적인 가족형태에서 벗어나 동성 부부의 모습도 SBS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비롯한 드라마와 영화, 다큐멘터리 등에서 속속 소개되고 있다.
이밖에 외국으로 유학 간 자녀를 뒷바라지를 위해 한국에 홀로 남아 생활하는 기러기 아빠, 30~40대 중년이 돼서도 여전히 부모에 의존하는 캥거루족, 자녀 주위를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간섭하는 헬리콥터족 부모, 이혼을 해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살거나 결혼을 할 생각이 아예 없는 비혼족(非婚族), 연애와 결혼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자신의 생활을 편하게 하는 초식남과 건어물녀 , 급증하는 연상연하 커플, 맞벌이 부부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DINK ‧ Double Incomes No Kids)족 등 변화된 가족 구성원의 모습이나 새로운 가족 구성원의 형태도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미디어와 대중문화 텍스트에는 변화한 가족 형태나 가족 구성원 모습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역할의 변모 역시 감지되고 있다. 근래 들어 육아와 가사를 담당하는 남편, 자녀들에게 친구 같은 아버지(프렌디-Friend Dady), 직업과 사업에 전념하며 가계를 책임지는 부인 등 가족 구성원의 역할이 크게 변하고 있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아버지의 말이 법이고 가정의 중심이었다. 1991년 방송된 MBC 드라마‘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나 지난해 12월 개봉된 ‘국제시장’의 아버지처럼 아내와 자식들의 생계를 무한책임 지지만 자식과 아내에게 권위적인 가부장적 아버지가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사회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남녀 차등의 수직적 관계가 남녀 동등의 수평적 관계로 전환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 역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가사를 담당하는 아버지와 직장 생활하면서 가계를 책임지는 어머니가 많이 늘어난 것이다.
가족 구성원의 역할 중 가장 크게 변한 것이 아버지다. 최근 들어 가계를 책임지며 자녀와 아내에게 권위적인 가부장적 아버지는 설 자리를 잃고 자식들에게 친절하고 자상한 친구 같은 아버지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KBS‘슈퍼맨이 돌아왔다’MBC ‘아빠 어디가’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부터 ‘가족끼리 왜 이래’비롯한 여러 드라마에서 친구 같은 아버지 , 프래디(Friend+Dady) 모습이 크게 늘었다.
또한 장기 침체로 인한 중년층 남성들의 조기퇴직, 실직, 그리고 베이비부머의 은퇴 등이 가속화되면서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아버지들의 모습 역시 대중문화나 미디어에 속속 등장한다. 어머니 역할 역시 크게 변했다. 어머니의 이상적인 모습은 남편과 자식을 위한 삶을 사는 ‘현모양처(賢母良妻)’다. ‘여로’같은 과거의 드라마나 영화에는 이러한 현모양처의 어머니 모습이 주류를 이뤘지만 최근의 대중문화 텍스트에선 직장에서 자아실현을 하거나 주체적 삶을 사는 어머니가 증가했다.
대중문화 텍스트는 이러한 가족 형태의 변화와 가족구성원 역할의 변모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가족 해체나 파괴, 그리고 결합을 드러내기도 한다. ‘막장 드라마’로 비판받는 드라마에서 극단의 가족 모습이 소재화되기도 한다.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어머니가 친딸을 며느리로 받아들이는 가족이 등장하는 것처럼 극단의 가족 형태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왔다 장보리’나 ‘장미빛 연인들’같은 드라마처럼 혈연을 거짓으로 속여 구성된 가족을 보여주는 등 왜곡된 가족 형태나 구성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의 비판처럼 현실에선 가족은 점차 왜소해지고 있는데 미디어와 대중문화 텍스트에선 가족에 대한 환상과 기대, 바람을 증폭시키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막장 드라마처럼 가족의 왜곡된 극단의 형태를 확대 재생산해 대중의 정서를 황폐화하는 부작용도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와 미디어는 가족의 해체나 파괴의 가속화, 경기침체와 취업난으로 인한 연애, 결혼, 자식을 포기하는 3포 세대의 급증, 그리고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심화 등으로 과거보다 가족의 중요성이 약화했지만, 여전히 가족은 삶에 있어서 사랑의 원천이고 인생의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일깨우고 확산시키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 (이 글은 건설공제조합 사보CG INSIDE 2015년 봄호에 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