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고용 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른 아침 7시 반에 시중 은행장들을 모아 연 금융협의회에서는 종종 금융권 채용 상황을 점검한다. 작년 4월 취임 후 처음으로 개최한 금융협의회에서는 당시 씨티은행장이었던 하영구 현 전국은행연합회장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구조조정 상황을 물었다. 그때 씨티은행은 대규모 점포폐쇄와 희망퇴직을 시행하고 있었다.
이 총재는 지난해 9월 열린 금융협의회에서는 은행장들에게 “채용을 작년보다 줄인다고 들었는데 많이 좀 뽑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이렇게 고용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데 굉장히 적극적이다. 반면 이 총재가 고용에 관한 메시지를 던질 때는 이보다 더 소심할 수 없다.
이 총재는 지난 22일 열린 금융협의회에서 “내년 60세 정년 연장이 시행되면 앞으로 2∼3년간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벌써 고용 대란 우려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많은 기사들이 ‘고용대란 우려’를 제목에 넣어 총재의 발언을 보도했다. 그러나 이 총재는 공보실을 통해 기자들에게 고용에 대한 외부 우려를 전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기사 제목에 고용대란을 넣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이 총재의 ‘유리멘탈’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평이 기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사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발언이지만 정부의 고용정책 효과에 대해 이 총재가 각을 세웠다는 분석이 제기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디지털혁명의 일자리 회의론을 제기했을 때도 뒤끝 ‘종결자’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 총재는 지난해 10월 21일 개최된 경제동향간담회에서 “1, 2차 산업혁명은 무수한 경제적 기회와 일자리를 창출했는데, 3차 산업혁명 격인 디지털혁명은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디지털 혁명의 결과물이 소수에게 부를 집중시킬 뿐 새로운 일자리는 창출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그의 발언은 디지털 기술발전의 이면을 드러내 크게 보도됐다. 하지만 이 총재는 서둘러 해명자료를 통해 “기사 내용을 단순히 소개한 것”이라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의 부담스러워 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내용의 발언에 이 총재가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역시나 정부 ‘눈치보기’로 해석된다.
당시 정부는 IT기술 기반의 신경제 기대감에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또 마침 이 총재의 발언 전날인 20일에는 ‘정보통신기술(ICT)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가 부산 벡스코에서 시작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ITU행사 개막식 축사에서 창조경제를 강조하며 한국 정보통신기술의 비전을 밝히기도 했다.
한은과 정부의 정책공조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중앙은행 총재가 정부를 지나치게 의식하느라 일자리 걱정 발언까지 주어 담아야 하는 것은 공조가 아니다. 한은의 통화정책 중립성을 의심 받을 여지만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