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최종병기 활’ 서군은 샌님처럼 보였지만 심지가 굳고, 사랑하는 여인 자인(문채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인물이었다. ‘은교’의 소설가 서지우는 스승의 천부적인 재능을 질투하고 소녀 은교를 탐하는 인물로 섬세한 감정 변화가 극의 몰입을 높였다.
배우 김무열(33)의 필모그래피는 화려하진 않지만 강렬한 존재감으로 뇌리에 박힌다. 뮤지컬 스타였던 그는 ‘작전’ ‘아내가 돌아왔다’를 통해 드라마ㆍ영화계에 안착했다. 그런 김무열이 영화 ‘연평해전’으로 3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와 눈길을 끈다. 지난해 7월 전역한 김무열의 복귀작이다. 그는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57호정 정장으로 소임을 다한 故 윤영하 소령을 연기한다.
▲"'연평해전' 시나리오 읽고 죄송한 마음 들었다."
11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진행한 김무열은 시종일관 장난기 많은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작품 속에서 보여준 캐릭터들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상반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도 ‘연평해전’이 가지고 있는 호국의 무게감을 이야기할 때는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진정성이 느껴졌다.
“(연평해전은) 알고만 있었다. 2002년 당시 대학생이었고, 한일 월드컵 응원의 중심에 있었다. 한국이 경기에서 이기면 대학로로 나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했다. 그렇게 연평해전은 그저 ‘남의 일’로 느끼고 있었다. 이후 군대 정신교육 시간에 국가안보 역사에 대해 배우면서 자세히 알게 됐다. 시나리오를 받고 느끼는 게 많았다. 반성도 많이 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김무열이 ‘연평해전’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군 제대 직후에서 오는 익숙함도, 흥행에 대한 기대감도 아니었다.
“영화를 보면 누구나 가슴이 뜨거워지고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장치적인 부분보다 이야기 자체가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는 2년 공백기가 있었고, 전역 후 복귀작이어서 생각이 많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연평해전’ 시나리오를 보고 오히려 그런 생각들을 배제하게 되더라. 그 정도로 마음이 동했다.”
“실제 진해 해군본부에서 촬영했다”고 말한 김무열은 실감 나는 촬영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재입대한 느낌이었다.(웃음) 대위 계급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경례하는 분도 있었다. 그럴 때는 촬영이 끝나고 찾아가 다시 인사드렸다. 고속정복을 많이 입었다. 더울 때 촬영을 해서 더 힘들었다. 이현우는 촬영 초반 ‘군인이 너무 하얗다’며 까무잡잡하게 칠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까매졌다. 함교에 서 있으면 햇빛에 그대로 노출된다. 먼 바다에 나갈 때는 파도에 몸이 붕 뜨고, 바닷물이 밑에서부터 얼굴을 때려 눈을 못 떴다. 해보니까 장난이 아니었다. 해군들 정말 고생 많이 한다.”
해전으로 고인이 된 실존 인물 윤영하 대위를 연기하는 부담감은 육체적 어려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컸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제작도 막중한 책임감을 안겨줬다.
“촬영 내내 ‘윤영하 소령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정말 많이 했다. 유가족은 ‘괜찮다. 재밌게만 만들어 달라.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 크라우드 펀딩 소식을 듣고 고무됐다. 많은 분의 응원과 성원이 모여 영화가 만들어진 만큼 많은 분과 나눴으면 한다.”
▲"군대 그리고 결혼. 여유 생겼다."
김무열은 지난 4월 배우 윤승아와 결혼식을 올렸다. 군대에서 결혼까지 인생의 굵직굵직한 ‘숙제’들을 하나씩 해나가며 차츰 성숙해지는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과거 촬영장에서 구석에 앉아있었던 그는 이제 여유를 찾고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한다.
“군대를 다녀오고 결혼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더 여유롭고 자유롭게 사람이 변하게 되더라. 아내는 아무래도 이 일을 정확히 알고 있으니 따로 이해시킬 일이 없다. 촬영장의 생리를 저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오늘 촬영 1시에 끝날 것 같아’라고 말하면 ‘3시에 끝난다’고 한다. 그럼 진짜 3시에 끝난다.(웃음) 아내가 SNS를 통해 팬들과 자주 소통하는 걸 좋아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저희 부부를)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이제 김무열은 배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연평해전’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김무열에게 첫 단추와 같다.
“젊은 배우로서 책임감이 있다. 계속 발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연평해전’도 그렇지만 배우로서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에게 전달하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데서 보람을 느낀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불특정 다수 혹은, 한 사람의 삶에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배우로 살면서 느끼는 보람 중 하나다.”
김무열은 인터뷰 말미 “당시 상황에 감히 빗댈 수 없지만 그 상황이 어땠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연평해전’을 촬영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저는 돋보이지 않아도 대한민국의 가슴 아팠던 이 사건에 대해 같이 나누는 의미가 됐으면 좋겠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이라는 영화의 본질을 생각하고 본다면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바람을 전했다.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대한민국이 월드컵의 함성으로 가득했던 그 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들과 그들의 동료, 연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감동 실화다. 상영시간 130분, 12세이상관람가. 2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