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車·조선 등 대표기업 실적 부진... 경기 반영 ‘PMI’ 33개월 만에 최저
국내 제조업이 불황의 터널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 등으로 올 초 경기 회복의 기대감이 컸지만 갑작스러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가 발목을 잡았다. 더불어 계속된 환율 불안, 유럽 재정 위기 등 글로벌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10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의 경기 동향을 나타낸 올해 경기실사지수(BSI)가 80을 기록한 지난 4월을 제외하고 줄곧 60~70대에 머물렀다. 기업의 체감경기를 0∼200으로 수치화한 BSI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이상이면 경기전망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며, 미만이면 그 반대다. BSI 지수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수출기업보다 내수기업이 더 낮은 추세를 보였다.
◇2분기 기업 대부분 ‘우울’ 3분기도 어렵다 = 제조업 경기 침체는 전자·자동차·조선·철강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의 지난 2분기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업종 대표기업의 경영 실적은 전분기보다 나아졌지만 지난해 수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각종 지표도 국내 제조업의 어려움을 반영하고 있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마르키트에 따르면 한국의 7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6으로 지난 2013년 8월(47.5) 이후 두 번째로 낮았다. PMI는 지난 6월 46.1로 2012년 9월(45.7) 이후 33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낸 바 있다. PMI는 50을 기준으로 웃돌면 경기가 확장, 밑돌면 위축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국은 28개의 조사 대상국 중 24번째로 PMI가 낮아 대만(47.1)과 인도네시아(47.3), 그리스(30.2), 브라질(47.2)과 함께 최하위권에 속했다.
업계는 메르스 여파,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수출부진 등으로 올 3분기에도 국내 제조업종이 큰 폭의 실적 개선을 이뤄내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韓 제조업 ‘주춤’, 美·日 ‘활기’ = 국내 제조업이 주춤한 사이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선진국은 제조업 르네상스를 맞았다. 미국은 지난해 말 제조혁신 가속화를 위한 ‘신행정 행동계획’을 필두로 한 강력한 제조업 부흥 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으며, 일본은 엔저로 대변되는 아베노믹스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과 일본 기업의 실적만 놓고 비교해 보면 국내 제조업의 역주행 형상은 더욱 뚜렷하다.
도요타는 올 2분기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증가한 5500억 엔(6조12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외에 혼다와 닛산 등 일본의 주요 자동차업체의 실적도 예상을 웃돌았다. 이들 기업의 호실적은 중국에서의 판매량 증가가 견인했다.
반면 현대차는 중국 공장의 올해 상반기 판매대수가 51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 줄었다. 지난달 현대·기아차의 중국시장 점유율은 7.3%로 전달의 9.1%보다 1.8%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도요타는 3.9%에서 4.2%로 늘었고, 닛산도 5.7%에서 6.2%로 높아졌다.
한때 삼성전자의 맞수였던 소니도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소니의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9% 증가한 969억 엔(9125억원)을 나타냈고, 순이익은 824억 엔으로 207.5% 급증했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6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 감소했다.
◇수출 되살아 나야… 중국 추격 따돌리는 게 관건 = 국내 경상수지가 지난 6월 기준 40개월째 사상 최장기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연간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011년 186억 달러에서 2012년 508억 달러, 2013년 811억 달러, 2014년 892억 달러를 기록했다. 올해엔 1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문제는 경상수지가 ‘불황형 흑자’라는 점이다. 수출이 늘어 흑자를 낸 것이 아니라 동반 감소한 수입이 더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3분기 수출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우리나라 수출 주력 품목 중 반도체를 제외하고 무선통신기기와 자동차는 지난달 실적이 좋지 않았다.
무선통신기기는 프리미엄급 스마트폰 수요 정체와 보급형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저가폰 공세가 겹쳐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6.0% 감소했다. 자동차도 엔화·유로화 약세에 러시아 등 신흥시장의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수출 감소율이 6.2%를 기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출 확대는 제조업 부흥을 위한 중요한 과제”라며 “중국, 일본 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도록 꾸준한 체질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