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협상이 25일 타결된 가운데, 북측이 지뢰도발에 대한 ‘유감’을 표명한 것이 여전히 뒷말을 낳고 있다.
남북 공동발표문에 따르면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고 돼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북측의 이런 저자세를 끌어낸 건 우리 정부로서는 작지 않은 성과다. 북측의 유감 표명이 없었다면 이번 협상 타결도 없었다.
하지만 북한이 이처럼 사과가 아닌 유감을 표시한 건 지뢰도발 주체가 자신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숨기기 위함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부족했다는 평가다. 지뢰매설을 자신들의 만행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냥 폭발 사고에 대한 유감 표명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유감’의 사전적 정의는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으로 사과와는 확연히 다르다.
일왕의 한국 식민지 유감 발언 때와 닮은꼴이다.
지난 1984년 9월 6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의 전년도 공식 방한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국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요구해왔다.
히로히토 일왕은 이날 열린 만찬에서 “금세기의 한시기에 있어 양국 간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는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식민 지배의 상징적 존재인 일왕이 한국과 관련한 과거사 발언을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런 만큼 나름의 의미는 컸지만 한국의 역사적 상처를 고려할 때 만족할 만한 수준의 표현은 아니었다. 일본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빠져 있었고, 사과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의 ‘유감’ 표명에 그쳤던 까닭이다. 지금까지 일본의 과거사와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일본의 이런 애매한 입장이 계속돼와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도 북한이 도발에 대한 명확한 사과를 표명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의 남북관계 상황에서 우리로서는 최대한의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