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직원 성비 비슷하지만 연봉 1억5000만원 이상 男 4%ㆍ女 0.4% 10배차이
미국 자동차 기업인 GM은 지난해 105년 역사상 최초로 여성인 메리 바라 최고경영자(CEO)를 지명했다. 글로벌 기업인 GM에 자녀 둘이 있는 여성이 CEO로 선임되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블루칩(우량기업)의 100년 묵은 유리천장이 깨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첫 여성 은행장(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이 선임되고 금융회사마다 여성 임원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금융권 ‘여풍(女風)’은 ‘미풍(微風)’에 그치고 있다. 40% 이상이 여성인 은행만 해도 여성 임원의 비중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유가 뭘까. 일과 육아를 함께할 수 없는 기업 문화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다. 보수적인 사고 방식과 학연 지연으로 얽힌 ‘인맥’도 주요인이다.
◇직원 비율 비슷하지만 고액 연봉자는 부족 = 금융권에 종사하고 있는 전체 직원들의 성비율은 비슷하다. 6월 말 현재 신한은행 금융사무직 전체 직원 1만4450명 가운데 남성은 8177명, 여성은 6273명으로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57%, 43%다. 국민은행도 2만553명의 직원 가운데 남성이 1만327명, 여성이 1만226명으로 대동소이하다. 하나은행의 경우에는 여성이 5639명, 남성이 3536명으로 여성의 비율이 오히려 높다.
보험업계 1위인 삼성생명은 여성이 2541명으로 남성 2941명에 조금 미치지 못하고 한화생명은 전체 3763명 직원 가운데 여성이 1738명을 차지한다
카드사도 마찬가지다. 신한카드는 3260명의 직원 가운데 여성이 1590명을 차지한다. 현대카드의 경우도 전체 직원 2932명 가운데 여성이 1940명으로 남성 992명에 비해 월등이 많다.
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높아지는 임금을 살펴보면 여성이 절대적으로 적은 상황이다. 금융권에서 5000만원 이상의 급여를 받는 남성 인력은 72.3%, 여성 인력은 44.6%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고액인 1억5000만원 이상의 급여를 받는 비율은 남성이 4%, 여성은 0.4%로 조사됐다. 1억∼1억5000만원 미만에서도 남성은 23.9%, 여성은 5.8%에 불과했다.
즉 금융권에서 고연봉을 받는 임원직에 여성보다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무 부서에서는 여전히 벽 존재 = 그렇다면 왜 국내 금융사에서 여성임원이 탄생하기가 힘든 것일까. 원인에 대해 업권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기 힘든 문화를 꼽았다.
남성 직원들은 임금피크제를 거쳐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거나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준정년 퇴직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여성 직원들은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특히 출산과 육아 등으로 자의든 타의든 중도에 일을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다. 출산·육아 지원책은 모범적이지만 인사상 불이익 등 보이지 않는 차별이 여전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금융사의 핵심 부서인 재무나 여신 부문에서는 여전히 ‘금녀(禁女)의 벽’이 있다”며 “출산·육아가 여성의 경력 단절에 결정적 요인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가 한국금융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금융인력 기초통계 분석 및 수급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이 투자은행(83.6%), 자산운용(76.3%) 등 요직에 집중된 데 반해 여성은 영업·마케팅(49.8%)과 영업지원(44.3%)에 포진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고객을 접하는 창구영업에 여성인력을 활용하는 금융계 관행이 반영된 결과다.
은행들은 최근 출산휴가를 포함한 육아휴직 2년 보장, 복직 전 재교육, 어린이집 등 여성의 출산·육아 지원책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인사상 불이익 등을 우려해 중도에 복직하거나 육아 또는 추가 출산의 부담으로 아예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 은행원이 여전히 적지 않다.
또한 보수적인 금융권에서 학연과 지연 등의 유대관계가 아직까지도 돈독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른바 연(緣)으로 점철된 이들의 관계는 회식과 술자리에서 더 끈끈해진다.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일과 가사의 병행 속에서 이들과 유기적 관계를 맺기란 쉽지 않다.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남성 우월주의도 주요인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