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충' '진지충' '설명충'이란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요즘 특정한 단어에 '벌레'를 뜻하는 '충(蟲)'이 결합한 호칭이 인터넷상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을 벌레에 비유하는 표현은 예전에도 있었죠. 가령 공부밖에 모르는 '공부벌레', 돈만 밝히는 '돈벌레', 일 중독처럼 일밖에 모르는 '일벌레'...
그런데 요즘 'OO충'이라는 표현...요~상합니다. 농담처럼 쓰이는가 싶으면 타인의 '민폐'행동을 비판하는 표현이고요. 비판인가 싶으면 차별과 무시하는 표현이 됩니다.
요즘 확산되는 수많은 'OO충'이란 표현은 1) '유머·농담형' 2)'민폐행동 비판형' 3)'차별·조롱형' 등으로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죠.
농담형의 대표적 예는 '진지충' '설명충'이죠. 진지충은 쓸데없이 진지해 분위기 못 맞추는 사람을 일컫는 표현인데요. '진지충'이 진화(?)하면 설명충이 됩니다. 설명충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진지충에 대해 이미 잘 아는 독자들에게는 기자 역시 설명충이 되는 셈이죠. ^^;;
여기에 탕수육 먹을 때 소스를 부어 먹느냐 찍어 먹느냐에 따라 '부먹충(부어먹는+충)과 '찍먹충(찍어먹는+충)'으로 불리기도 하고요. 페이스북 아무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따봉충'도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농담, 재미 위주의 표현이죠. 그러나 무개념 행동을 일삼는 일부 그룹을 비판하기 위해 쓰인 'OO충' 표현도 있습니다.
'노인충'은 대중교통에서 일부 '진상' 노인층을 지칭하는 표현이죠. 그런가하면 '맘충'은 어머니(Mom)에 벌레 '충'을 붙인 단어인데요.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거나 우는 것을 내버려둬 타인에게 불편을 주는 일부 어머니들을 가리키는 말이죠.
문제는 이런 표현의 쓰임이 확장돼 민폐의 여부와 상관없이 특정 집단을 싸잡아서 비하하는 표현으로 전락한 데 있습니다. 실제로 '노인충'과 '맘충'은 일부 온라인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특정 연령대 전체를 지칭해 비하하는 표현이 돼버렸고요.
'지균층', '기균층'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얼핏 들으면 '해충'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이 단어...알고보면 '지역균형'이나 '기회균등' 선발로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을 비하하는 표현입니다. 여기에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X꼬충'으로 'X독충'처럼 특정 종교인들을 가리키는 표현도 등장했습니다.
타인을 넘어 자신의 무능력함을 '셀프' 조롱하는 표현도 있습니다. 예컨대 취업을 위해 토익 공부에 올인하는 '토익충', 억지로 출근하는 '출근충' 등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너나 할 것 없이 '벌레'로 부르고 불리게 됐을까요? 전문가들은 청춘들의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퍽퍽한 현실에서 궁지에 몰린 청년들이 자조적인 공격성과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죠.
지난 7월 기준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9.4%. 청년 10명 중 1명은 실업자인 셈입니다. 최근 한 아웃도어 브랜드가 마음의 온도를 설문 조사한 결과 한국인의 심리적 체감온도는 마이너스(-) 14도. 그중에서도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의 체감 온도는 영하 17도. 그야말로 엄동설한입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마음이 얼어버린 청년들.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대인관계'를 포기한 '5포 세대'를 넘어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7포 세대'라는 자조섞인 말까지 나오는데요. 타인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너그러워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e기자의 그런데] '사람보다 더 잘하는' 섹스로봇 시대가 온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