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이 벌레가 된다. 인간이 하루아침에 흉측한 해충으로 변하는 것은 카프카의 소설 ‘변신’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2015년 대한민국 사회에선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과 집단이 벌레로 전락한다. ‘지균충’ ‘기균충’ ‘의전충’ ‘맘충’ ‘노인충’ ‘무임충’ ‘똥꼬충’ ‘개독충’ ‘좌좀충’ ‘우꼴충’…사람에 대한 벌레 명명 행렬은 끝이 없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벌레 낙인 전쟁이다.
지역균형 선발, 기회균등 선발 방식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어느 사이 그렇지 않은 일부 학생들에 의해 ‘지균충’‘기균충’으로 명명돼 모욕을 당한다. 나이가 들어 무임승차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무임충’으로, 늙었다는 이유로 대우받으려는 일부 문제 있는 행태 때문에 노인들은 졸지에 ‘노인충’으로, 이성이 아닌 동성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똥코충’으로 낙인찍혀 혐오의 대상이 된다. 지향하는 세계가 다르다고 ‘좌좀충’ ‘우꼴충’으로 벌레 취급당한다.
대한민국 사회가 벌레 득실대는 사회로 돌변하고 있다. 벌레로 낙인찍는 전쟁은 이제 건강한 공동체와 민주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서부터 기득권층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병들고 있다. 벌레로 낙인찍는 현상은 다름 아닌 혐오와 배척, 차별, 냉소, 불안이 자리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세대, 양극화 병폐의 종합전시장이다.
기득권층과 사회적 강자, 그리고 갑(甲)들은 혐오와 수치심을 동원해 노인, 여성, 성적 소수자, 빈곤계층, 장애인,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그리고 이 땅의 을(乙)들을 벌레로 전락시킨다. 정치철학자 마사 너스바움(MARTHA C. NUSSBAUM)이 ‘혐오와 수치심-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에서 일부 사람과 법을 비롯한 사회적 제도는 혐오와 수치심의 감정을 동원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취약한 집단을 비정상으로 치부하고 주변화시킨다고 강조한다. 바로 사회적 약자와 을들을 비정상으로 배척하는 것이 다름 아닌 브레이크 없이 무한 질주하고 있는 벌레 낙인작업이다.
벌레 낙인 전쟁의 또 다른 얼굴은 학업과 취업, 그리고 직업 경쟁에서 이탈하거나 낙오한 사람들이나 패자부활전이 불허된 상황에서 한 번의 패배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이 이 사회에서 당하는 수치와 차별, 모멸감을 타인에 대한 혐오로 분출하는 것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가 ‘벌레 이야기’라는 글에서 적시했듯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업신여겨 지고 있다는 모멸감과 수치심은 자기 삶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결국 타자에 대한 혐오와 공격이라는 심리적 반작용이 나타나게 된다”고 분석했다. 차별받고 모멸당하는 사회적 약자와 을들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심리적 반작용으로 타인을 벌레로 전락시키고 있다.
우리 사회가 각종 벌레로 득실대는 사회로 전락한 이면에는 자신과 다른 것,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양극단의 당파성으로 무장한 극단주의 사람들이 자리한다.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위기관리 능력 부족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종북으로 몰리면서 졸지에 ‘좌좀충’이 된다. 반대로 노조를 비판하고 야당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수구꼴통으로 찍히며 ‘우꼴충’으로 전락한다.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 교수는 ‘미디어 문화와 사회’에서 “극단주의로 물든 사람들은 소통과 타협을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내부비판을 불허하고 평소 주장과 다른 객관적 사실이 드러나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극단주의로 물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나 폐해를 방어하고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견해와 다른 사람을 벌레로 낙인찍는 작업을 진행한다.
그야말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벌레 낙인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건강한 공동체의 와해다. 민주사회의 붕괴다. 인간성의 파괴다. 그런데도 당신과 나, 우리를 향한 무차별적인 벌레 낙인 전쟁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오늘 무슨 벌레로 낙인찍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