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가정 양립’을 지원해야 할 이유

입력 2015-09-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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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일·가정 양립이란 말 그대로 취업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일·가정 양립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법(남녀고용평등법 등)에서 근로자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것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 직장과 가정의 병행은 거부할 수 없는 트렌드가 됐다. 2000년대 들어 성장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사회적 위험으로 가시화하면서 ‘여성 인력풀의 활성화’가 더욱 요구됐고 이를 위해 ‘모성보호 및 일·가정 양립 지원’이라는 인프라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됐다.

과거의 종신고용 및 연공서열 임금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에도 그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직원은 회사를 위해 장시간 일하는 대신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한다’는 가정은 현실적 토대를 잃은 지 오래다. 근로자가 가정생활의 책임을 감당하며 일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답인 셈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일과 가정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이 두 가지를 양립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는 상태다. 향후에는 더 빠르게 이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가정 양립의 가치는 계속 추구될 것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사각지대 해소와 인식 및 문화의 개선이다. 예컨대 ‘여성=가사와 양육의 전담자’라는 기존의 인식에 대한 아무런 변화 없이 일ㆍ가정 양립 조치의 시행은 여성의 역할 가중만 가져온다. 남성 부양자 모델에서 벗어나 남녀가 공히 일과 가사를 분담하고 병행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가정 양립은 제도보다는 문화라는 주장도 나온다.

육아휴직제도 등 일·가정 양립제도는 대기업ㆍ정규직 근로자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어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근로자들에게는 아직도 먼 이야기다. 지난 10년간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은 보육, 휴가·휴직제도 등의 제도 측면에서 현저한 발전이 있었다. 일례로 육아휴직자 수는 2002년 3763명에 그쳤지만 작년에는 7만6833명으로 급증했다. 이 중 대기업의 정규직 근로자가 주된 수혜층이고 또 96%가 여성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부가 이번 2016년 예산안에 영세사업장·남성·비정규직 등 모성보호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예산을 반영한 것은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올해 7월부터 근로자 육아휴직 시 중소기업 사업주에게 제공하는 지원금을 기존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이 내년에도 시행된다.

또 주로 남성에게 해당하는 한 아이에 대한 두 번째 육아휴직자의 육아휴직을 촉진하는 조치가 강화된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통상임금의 40%만 제공하는 일반 육아휴직급여와 달리, 두 번째 육아휴직자에겐 첫달에 한해 100%의 급여를 제공하는 제도가 내년부터 3개월로 연장된 것이다. 또한 근로자 친화적 보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직장어린이집 지원사업 예산을 16.4% 증액한 1058억원으로 편성한 것도 긍정적 변화다.

주목할 점이 또 있다. 일·가정 양립 환경 개선지원 사업이 신설된 점이다. 32억원이 투입돼 유연근무제 활용 시 사업주에게 최대 월 30만원씩 1년간 지원되며, 기존 ‘일家양득 캠페인’과 연계해 추진될 계획이다. 장시간 근로에서 벗어나 시간과 장소를 유연하게 활용하는 고용 문화로의 변화를 유도해 근로자들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비록 예산이 많이 책정되진 않았지만 정부가 일과 가정 양립을 적극적으로 촉진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향후 정부의 적극적인 일·가정 양립 촉진 후속 조치들도 기대해본다.

다만 아직도 현장에서는 ‘눈치법’ 등으로 맘 편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만연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6년 예산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효율적 사업운영과 함께 모성보호 사각지대의 근로자·사업주 인식을 변화시키는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이 일ㆍ가정 양립을 혜택이 아니라 권리로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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