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챔피언 친구 강칠과 종구가 과거의 오해를 풀어나가는 데 필요한 한 마디 ‘미안해’. 까칠한 여배우 서정을 10년째 짝사랑해온 매니저 태영의 용기 있는 한 마디 ‘사랑해’.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의 딸 은유와 마주해야 했던 형사 명환이 서로의 상처를 감싸 안으며 건넨 한 마디 ‘고마워’. 평범하지만 값진 세 마디를 통해 얻게 된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의 전윤수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Interview.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의 전윤수 감독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게 된 계기와 메시지가 궁금합니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갈등의 연속이고 그것이 인생의 본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행복과 좌절을 느끼며 살지요. 저에게 지난 몇 해는 즐거운 일보다는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 위로받고 치유하기를 원합니다. 영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가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포근하게 안겨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라는 말을 주고받을 때 느껴지는 행복감과 충만감을 우리 영화를 통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왕년의 챔피언 친구 에피소드를 그려내는 데 모티브로 삼은 이야기가 있다면.
몇 해 전 왕년의 복싱스타 박종팔과 친구 이효필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습니다. 서로 친한 친구 사이지만 승부에 있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그것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화해하지 못한 채 헤어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착안해 만든 에피소드입니다. 승부욕으로 인해 멀어진 두 사람이 말년에 병원의 같은 병실에서 만나게 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상상해 보다가 떠올랐고, 두 사람이 못다 이룬 승부를 위해 시합을 벌인다면 어떤 상황과 감정들이 유발될까 궁금했습니다. 갈등과 용서와 화해를 통해 우정의 회복을 영화에 담으면서 인생은 아름답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두 중년배우 김영철과 이계인의 호흡은 어땠나요?
두 분은 청년시절부터 탤런트 공채로 방송활동을 한 베테랑 연기자이지만, 막상 지금껏 서로 맞붙는 배역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계인 선생님의 눈 속에 숨겨진 순박함과 김영철 선생님의 눈 속에 담긴 정서가 묘한 앙상블을 이루어 저와 스태프들은 정말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이 웃옷을 벗은 채 글러브로 서로를 강타할 때 혹시 모를 부상에 대한 걱정도 했지만 두 분 모두 인생 최고의 희열을 느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관객들도 두 분의 연기를 통해 현장에서 느꼈던 가슴 뭉클한 감정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통해 배우 이계인의 재발견이 회자되길 바라고 연출자에게 깊은 감동과 아직은 도달하기 힘든 디테일한 인생의 단면들을 발견하게 해주신 김영철 선생님께 존경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다른 배우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궁금한데요.
다른 배우들의 호흡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진희씨는 영화 속에서 혼자 연기하거나 아역배우들과 연기하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 희망을 만나게 되는 형사 역할로 범인의 딸로 등장하는 아역배우 곽지혜와의 호흡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배우들은 서로간의 감정과 호흡으로 배역을 교감하며 연기를 하는데 사실, 주요 상대 배역이 아역 배우일 때 현장에서 캐릭터의 감정을 꾸준히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스텝들도 조마조마하게 아역 연기자의 연기를 지켜봐야 하구요. 아이들은 집중력을 오랫동안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죠. 촬영 중반쯤 곽지혜 양의 눈물 고백 연기가 있던 날은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 모두 긴장하고 있었고 지진희씨의 감정을 유지시키기 위해 스텝들 역시 매우 예민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세트장은 마치 마법에 빠진 듯 했습니다. 곽지혜양의 연기가 세트장의 모든 스텝들을 울게 한 겁니다. 모니터를 보는 감독 역시 마치 뭔가에 홀린 듯 곽지혜의 연기에 빠져들었고 등 뒤에서는 조용히 흐느끼는 스텝들의 훌쩍임도 들리더군요. 마치 마법을 경험한 것처럼 모든 스텝들이 영화 속 배우들의 감정에 빠져 쉽게 나오지 못한 겁니다. 지진희씨는 촬영 후 곽지혜양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저 네 눈빛에 리액션만 해도 온 몸이 짜릿짜릿했다면서 진심으로 고마워하더군요. 핑클이 한창 활동 중일 때 김성균씨는 성유리씨의 팬이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에서 로맨스 연기를 펼치게 된 것이죠.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장면에 진심이 담겨있었어요. 관객들에게도 그 마음이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평소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이 세 마디를 잘 표현하시는 편인가요?
저는 표현을 하지 않고 그 감정을 안에 담아두는 데 익숙해 때로는 차갑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부끄럼이 많아서입니다. 표현하는 용기가 절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감정을 세련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아직 서툽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끝까지 지켜나가려면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를 실천해야겠다고 느꼈고 이 영화가 나를 조금 더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시나요?
마음을 고백하고 싶은 순간이 있지만, 막상 가까운 사람일수록 말을 꺼내기란 쉽지 않죠. 고백하고 위로받고 소통하고 치유 받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영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고백의 순간 생각지도 못한 마법의 순간과 기적이 찾아온다는 것을 우리 영화를 통해 같이 경험했으면 합니다.
△ 전윤수 감독
<은행나무 침대>, <쉬리>의 조연출. 제25회 황금촬영상 신인감독상 수상.
<베사메무쵸>, <식객>, <미인도> 등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