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맛봤다. 좌절하고 눈물도 흘렸다. 하지만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울수록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5년을 달려왔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투데이와 함께 성장한 스포츠 스타 3인을 만났다. 그들이 달려온 5년을 돌아보며 위기와 기회에 대한 해법을 찾았다.
입단 첫해 경험부족으로 ‘쓴맛’
선배 플레이 분석하며 ‘구슬땀’
‘광양 루니’ 별명…‘공격 핵’으로
◇전남 드래곤즈 이종호= ‘광양 루니’ 이종호(23)가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K리그 역사에 영원히 남을 업적을 쌓겠다는 것이다. 올해로 3시즌 연속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를 달성한 이종호는 어느새 프로 5년차로 노련미를 축적해가고 있다.
2011년 입단 첫 해 이종호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였다. 끈기와 근성은 좋지만, 세밀함과 경험이 부족하고 침착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광양제철중과 광양제철고를 거쳐 기대주로서 주목을 받으며 이종호는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했지만, 21경기 2득점 3도움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자만심이 문제였다. 야심차게 뛰어든 프로 데뷔 첫 시즌은 그렇게 잔인한 기억으로 남았다.
경기 출장은 많았다. 신인으로서 30라운드 중 21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한 것이 뭐 있나”라는 일부 팬들의 비아냥이 이종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나 잘하는데. 보여줄 것도 많은데.” 마음 속으로 수도 없이 외쳤지만 “이대로는 3~4년 하다 그저 그런 선수로 남거나 은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함만 있을 뿐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발버둥을 치며 2년을 보냈다. 시즌을 마친 어느 날 노상래 감독은 이종호를 불러 이종호의 플레이가 담긴 영상과 이동국의 활약이 담긴 비디오를 보여줬다. 이종호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아찔했다고 한다.
이종호는 “나와 이동국 선배의 차이가 보였다”며 “빠르기만 하다고 좋은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이종호는 이동국, 데얀 뿐 아니라 루니, 팔카오, 아구에로의 플레이를 세밀하게 분석했다. 경기에서 다른 선수의 플레이를 시도해 자기 것으로 만들고 나니 창의성도 생기고, 경기가 재미있어졌다. 그는 지난 시즌 31경기에 나서 10득점 2도움으로 활약했고, 올해도 전남 공격의 핵으로 자리잡았다.
이종호는 “1~2년차 때는 ‘어리니까 헤쳐나가면 돼’라는 생각으로 버텼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힘들었던 것이 프로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이젠 5년차로서 책임감도 늘었다. 스스로 평가하는 공격수 이종호의 점수는 10점 만점에 7.5점이다. 그는 “더 위협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며 “골 결정력과 기회를 만드는 능력을 키워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2011년 넥센 데뷔… NC 합류
無勝 악몽 2군행… 제구력 매진
올 ‘사이드암 선발’ 최다승투수
◇NC다이노스 이태양= 이를 악물고 몸을 낮춰 오른팔을 채찍처럼 옆으로 휘두른다. 손을 떠난 공은 포수의 미트에 정확히 꽂히고, 타자의 방망이는 허공을 갈랐다. 심판의 삼진 콜이 불리며 긴장되던 1회가 끝나자 이태양(22)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태양은 201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14순위로 넥센에 지명을 받아 프로로 데뷔했다. 하지만 데뷔 첫 시즌은 1군에서 총 9경기에 나서 8.2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쳤다. 이후 2012시즌이 끝나고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NC에 합류했다.
2013년 이태양은 감격스러운 프로데뷔 첫 승을 거뒀다. 시즌 초반 불펜 요원으로 시작한 이태양은 부진했던 노성호를 대신해 선발진에 합류했다. 2013년 4월 13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6이닝 동안 노히트노런으로 팀의 첫 홈 승리와 개인 첫 승리를 함께 따냈다. 당시 기억을 더듬던 이태양은 그날 승리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구위가 저하된 이태양은 선발 4승을 마지막으로 1군에서 말소됐다. 지난 시즌에는 1군 9경기에서 한 번도 승리를 따내지 못하고 2군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태양은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좋은 환경에서 하루하루 발전한다는 생각으로 행복하게 야구에 전념했어요. 만약 1군에만 있었다면, 지금의 간절한 마음을 가지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고 털어놨다.
절박함이 큰 무기가 되었을까. 2015시즌을 맞은 이태양은 환골탈태했다. 지난 4월 1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701일 만에 승리를 따낸 데 이어 사이드암 선발 최다승까지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체력과 제구 훈련에 집중한 결과다. 이제 이태양은 우승후보 NC의 3선발로 자리를 굳혔다.
하지만 이태양은 ‘여전히 배울 게 많은 막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를 내보였다. 그는 “선발과 계투를 가리지 않고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해 팀에 보탬이 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속수무책’ 첫 경기… 벤치 신세
포지션 교체되며 출전 기회
‘국대센터’ 명성…올해는 우승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최민호= “꾸준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남자배구 국가대표 센터 최민호(27)의 말이다. 올해로 프로 데뷔 5년차다. 그에게 프로 데뷔 첫 경기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2011-2012시즌을 앞두고 드래프트 4순위로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은 최민호의 포지션은 레프트였다. 하지만 출전 기회를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연일 벤치 신세였던 그는 그해 11월 대한항공전에서 첫 출전 기회를 얻었다. 당시 하종화 감독은 뒤져 있는 상황에서 최민호를 투입해 리시브 강화를 노렸다.
그러나 최민호는 속된 말로 털렸다. 그는 “제가 뭐 하고 있는지도 몰랐고, 정신없었죠”라고 말하며 “아. 프로란 이런 곳이구나 깨달았어요”라고 회상했다.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던 그는 이선규의 부상으로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았다. 포지션은 센터. 30경기(90세트)에 출전해 블러킹 성공 39회를 기록했다. 그는 “잘한건 아니지만, 못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민호는 프로 3년째부터 안정적으로 출전 기회를 얻었다. 출전 기회가 많아진 만큼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 눈에 들어왔고, 실력도 늘었다. 경험이 쌓이자 게임의 리듬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그는 “게임을 많이 뛰는 게 중요해요. 하다 보니 블로킹도 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최민호는 ‘팀 막내’에서 이제 후배를 이끄는 위치가 됐다. 그는 지난 시즌 ‘V리그 베스트7 센터’로 선정됐다. 99개의 블로킹으로 전체 선수 중 정규리그 2위를 차지했다.
올 시즌 현대캐피탈은 최태웅 감독과 함께 스피드 배구로 우승을 노린다. 지난 시즌 선수 시절 처음으로 맛본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의 굴욕을 씻어내겠다는 각오다. 그는 “준비는 많이 했지만, 아무래도 (스피드 배구가) 처음이다 보니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라면서도 “한 게임, 한 세트에 최선을 다하면 그 뒤에는 우승이 있지 않을까요”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