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누르는 것 봤다" vs "세탁기 배치가 문 부딪치게 돼 있어"
"의도적인 지 알 수 없지만, 세탁기가 고장날 만큼 강하게 누르는 것을 봤다.(검찰 측 증인)"
"세탁기와 건조기가 문을 여는 방향이 반대인데, 배치상 양쪽을 다 열면 서로 문이 부딪치게 돼있는 구조 아닌가요?(변호인)"
독일 베를린 국제 가전전시회에서 LG가 삼성세탁기를 고의로 파손했다는 외혹과 관련해 6일 열린 조성진(59) LG전자 홈어플라언스 사업본부장(사장)에 대한 재판에서 사건 목격자가 증인으로 채택돼 검찰과 변호인이 열띤 공방을 벌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9부(재판장 윤승은 부장판사)의 심리로 이날 열린 공판에는 재독일 교포 정모 씨가 증인으로 채택됐다. 정 씨는 당시 전시장에서 백색가전 전시장을 총괄 담당하던 인물로, 제일기획 독일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 씨는 검찰 조사에서 LG 측이 세탁기를 파손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날 검찰은 정 씨의 진술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정 씨의 진술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사건 당일 상황은 이렇다. 당시 삼성전자에서 임원진이 방문하기로 돼 있었는데, 정장차림의 한국인들이 들어오자 정씨는 그들이 삼성전자 관계자들인 줄 알고 동선을 지켜봤고, 그 중 한 명이 세탁기를 강하게 눌러 파손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정씨는 매장 직원이 세탁기가 파손됐다고 얘기하자 문제가 된다고 여겨 황급히 LG임원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제지한 끝에 일행 중 조한기 세탁기연구소장(상무)를 붙들 수 있었다. 경찰이 출동한 끝에 LG측은 파손된 세탁기 4대를 모두 구입하기로 했다는 게 정 씨의 설명이다.
정씨는 "'자켓을 입은 남자'가 세탁기 드럼 안을 들여다보듯이 몸을 숙인 채 왼팔로 세탁기를 강하게 누르는 것을 봤다"는 등 매우 구체적인 진술을 해 눈길을 끌었다. 검찰은 정 씨의 진술을 일일이 확인하고, LG 측이 세탁기를 구입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정 씨의 진술이 믿을만 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변호인 측은 정 씨의 진술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세탁기 파손은 LG측 조작이 아니라 전시장 배치 구조에 기인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변호인은 "당시 정 씨가 파손과정을 목격한 것은 세탁기가 아닌 건조기인데, 건조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밀어 문을 여는 방식이라 강하게 눌렀다는 게 사실이면 오른손으로 누르는 게 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정 씨가 '왼팔로 누르는 것을 봤다'고 진술한 부분과 상반되는 대목이다.
변호인은 또 정 씨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파손된 세탁기 수가 2대라고 했다가 나중에 4대로 정정한 부분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 씨는 "나중에 4대가 파손된 걸 알았는데, 어느 시점에 알았는 지는 기억이 희미하다'고 답했다.
변호인 측은 당시 파손된 세탁기가 나온 점에 대해 삼성 측의 제품 진열이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 건조기는 왼쪽에서 오른쪽, 세탁기는 반대방향으로 문을 열게 돼 있는데 당시 매장에서는 건조기를 왼쪽에 두는 바람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문끼리 부딪치는 현상이 수시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변호인 측은 정 씨를 통해 당시 사건이 있던 매장이 아닌 다른 매장에서도 비슷한 파손사례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LG와 삼성의 세탁기 파손 분쟁은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전시회에서 삼성이 자사의 세탁기를 파손한 혐의로 조성진 LG전자 사장에 대해 수사를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당초 삼성 측은 명예훼손 혐의로도 조 사장을 고소했으나, 합의가 이뤄짐에 따라 현재 재판은 세탁기 손괴 혐의 부분에 대해서만 공방이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