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나 주택가에 전단이 낙엽처럼 뿌려져 있다. 과외 구하는 것부터 술집 광고까지 참 다양하다. 전단(傳單)은 선전이나 광고를 하기 위해 글 따위를 적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뿌리거나 붙이는 종이를 말한다. 전단은 종류에 따라 특정 사안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설득 커뮤니케이션 성격을 드러내기도 하고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제공 및 판매 마케팅을 위해 행하는 상업적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선거철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민심 살핀다고 지하철 타고 서민 승객 만나는 일회용 쇼를 벌이는 정치인들 모습이 심심찮게 보이기 때문이다. 홍보용 이벤트로 지하철을 탄 정치인이나 단체장, 장관 등은 지하철 벽에 꽂힌 전단에 시선을 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니 전단이 꽂히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평상시에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하철에 붙은 전단은 대부분 불법이지만, 그 전단은 민심과 세상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단초 역할을 한다. 지하철 전단은 서민의 경제 상황과 일상의 이슈, 풍속도를 적시해주는 하나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 5일 오전 6시 10분께 서울 용산역을 지나는 1호선 인천행 지하철. 그 시간에 지하철 벽에 붙여진 광고 전단을 한번 살펴봤다. ‘개인파산/회생 도와 드립니다’ ‘못 받은 빚 이자까지 받아드립니다, 채권추심’…장기적인 경기 침체는 서민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때문에 개인 파산도 늘고 가계 빚도 늘었다는 사실을 채권 추심과 관련한 지하철 전단은 강렬하게 보여준다.
고용 없는 성장과 취업 절벽의 절박함 역시 지하철 전단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신고 공익요원 월 200만~300만 원 보장’ ‘관리직 급구, 나이 50~75세, 월 200만 원 보장, 점심 제공’… 신고 공익요원? 처음 들어본 용어다. 전단에 쓰인‘감시촬영장비 본인 부담’이라는 문구를 읽고서야 카파라치처럼 불법적인 것을 적발해 포상금을 받는 사람을 ‘신고 공익요원’이라는 신조어로 지칭한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깨닫는다. 신고 공익요원이라는 직업도 씁쓸하지만, 더 가슴 아픈 것은 이러한 전단 대부분이 카메라 등 장비만 팔아먹고 나 몰라라 하는 서민 등치기용 상술이라는 점이다. 그럴싸한 ‘관리직 급구’전단도 마찬가지다. 찾아가 보면 대부분 다단계 사업이거나 물건판매를 위한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다. 일자리에 대한 서민의 절박함을 악용해 돈을 벌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남남북녀’‘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여성과 결혼’이라는 제목의 전단도 가득하다. 지하철 벽에 붙어 있는 이들 전단은 한국에 정착한 북한출신 새터민 여성 혹은 동남아 여성과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주선하는 업체 광고 전단이다. 이들 전단에선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새터민과 동남아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과 이들을 상품으로 여기는 인권 침해적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상가 급매’ ‘대박호텔 1억 원 투자, 월수입 120만 원 보장’ ‘1억 원에 오피스텔 4채 분양, 분양 수익 월 100만 원’‘급매-객실분양 1900만 원 투자 월 60만 원 확정수익’…이들 전단은 경기 침체의 정도와 서민들을 속여 손쉽게 돈 벌려는 사기성 한탕주의가 성행하는 현실의 일단을 보여준다. 이밖에‘신용불량자 휴대폰 즉시 개통 가능. 대포폰 다량 보유’‘대포차 해결’이라는 제목의 전단들은 돈만 벌 수 있다면 불법도 불사하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지하철 전단만 살펴봐도 우리 사회의 상황과 서민의 처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선거용 그리고 홍보용 이벤트로 서민 승객들과 악수 쇼 하는 정치인, 공직자 여러분, 지하철 내리기 전에 전단에도 한 번쯤 눈길 주기 바란다. 그래서 전단에 깔린 서민의 처지와 고통을 헤아려보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