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분란·독과점 논란 등 위기 의식…신동빈 회장 직접 나서 지지 호소
연말 종료되는 면세점 사업권을 둘러싼 대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올해 특허가 만료되는 곳은 롯데면세점 소공점(12월 22일)과 월드타워점(12월 31일), SK네트웍스의 워커힐면세점(11월 16일), 신세계의 부산 조선호텔면세점(12월 15일)이다. 관세청은 지난달 25일 이곳의 특허신청 접수를 마감하고, 심사를 준비 중이다.
당초 이번 면세점 2차 대전은 기존 사업자가 사업권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롯데의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게 됐다. 국적 논란까지 일면서 반(反)롯데 정서가 확산돼 면세점 재허가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면세점을 수성하려는 롯데·신세계·SK네트웍스와 새롭게 도전장을 낸 두산·형지 간의 서로 물고 물어뜯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연말 면세점 사업에 출사표를 던진 5개 기업의 전략과 약점들을 살펴본다.
“롯데면세점은 앞으로 5년 동안 사회공헌 분야에 1500억원을 투자하고, 2020년까지 세계 1위를 달성해 ‘서비스업의 삼성전자’가 되겠습니다.”
지난 12일 인천 중구 운서동 롯데면세점 제2통합 물류센터에서 열린 ‘롯데면세점 상생 2020’ 선포식에 참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떨리지만 단호한 어조로 지지를 호소했다. 총수인 신 회장이 계열사 간담회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다. 직접 지지를 호소할 정도로, 그의 말에는 면세점을 수성(守城)하기 위한 절박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롯데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반(反) 롯데 정서’가 확산되고 있고, 독과점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해 연말 특허권 전쟁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탈락시 호텔롯데 상장·순환출자 등 개혁에 차질 = 서울 시내면세점을 놓고 롯데·두산·신세계·SK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롯데는 수성(방패)에 사활을 걸고 있다. 롯데가 지켜야 할 곳은 소공점(12월 22일)과 월드타워점(12월 31일)이다. 1곳이라도 다른 곳에 빼앗길 경우 타격은 심각하다.
소공점은 지난해 매출이 1조9763억원으로 국내 1위 면세점이다. 서울 시내 6개 면세점의 지난해 총 매출액(4조3502억원)의 45.4%를 차지한다. 월드타워점은 매출액이 6000억원 규모에 불과하지만,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숙원사업인 롯데월드타워라는 상징성과 향후 성장성을 고려한다면 내줄 수 없는 곳이다.
단순히 매출 규모를 떠나서, 연말 특허권을 지키지 못하면 신 회장이 국민에게 약속했던 호텔롯데 상장과 순환출자 해소 등의 롯데 개혁에도 차질이 생긴다. 상장을 앞두고 있는 호텔롯데의 매출은 롯데면세점에서 80%가 넘게 발생한다. 호텔롯데가 한국 롯데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 회장이 두 면세점을 잃을 경우 그룹의 지배권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이는 나아가 면세점 수성이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홍균 롯데면세점 대표이사 사장은 “호텔롯데 법인의 매출과 영업이익의 85% 정도가 롯데면세점에서 나오는데 만약 롯데면세점이 다시 특허를 받지 못하면 (호텔롯데의)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이렇게 되면 IPO(상장)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고배를 마실 경우 글로벌 면세점을 꿈꾸는 롯데의 비전도 발목이 잡히게 된다. 롯데면세점은 1980년 1월 소공동 본점에 개점한 이후 현재 전국 7개, 해외 4개 매장과 인터넷 면세점을 운영 중이다. 2014년 기준 매출 4조원을 돌파했으며, 세계 3위에 오를 정도로 브랜드 파워도 인정받고 있다. 신 회장의 목표는 세계 1위다.
◇경쟁자는 없지만… 경영권 분쟁·독과점 논란 = 롯데는 국내 1위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그간 면세업을 해오면서 재입찰에 신경 써본 적이 없다. 이 같은 자신감은 이홍균 사장의 발언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 사장은 ‘롯데면세점 상생 2020’ 선포식에서 경쟁기업 중 어디가 가장 위협적이냐는 질문에 “롯데는 듀프리나 디에프에스 등 세계적인 기업과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서는 경쟁자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나온 ‘친일기업 논란에 따른 반롯데 정서’와 ‘독과점 이슈’라는 두 가지 약점이 있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면세점 입찰 국면에서 다시 경영권 분쟁의 불을 지핀 게 화근이다. 신 전 부회장은 14일 한·일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 광윤사를 장악함으로써, 그룹 경영권 탈환을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롯데그룹 측은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 유지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신 전 부회장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 특히 총점 1000점인 관세청의 면세점 재입찰 선정 평가 점수 가운데 운영인의 경영능력(250점)이 가장 큰 상황에서 신 전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 소송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또 롯데는 독과점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내 면세점 시장에서 롯데의 시장점유율은 60.5%에 달한다.
◇롯데의 방패 카드 “사회공헌에 1500억 푼다” = 면세점 수성에 사활을 건 롯데는 예전보다 큰 사회공헌 보따리를 풀었다. 2020년까지 총 1500억원을 지출한다. 신 회장이 ‘롯데면세점 상생 2020’ 선포식에서 직접 밝힌 ‘상생 2020’은 중소·중견기업과의 상생, 취약계층 자립 지원, 관광인프라 개선, 일자리 확대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소 파트너사 동반성장펀드 조성, 중소 브랜드 매장면적 확대, 인큐베이팅관 도입, 취약계층 자립지원 등을 실천할 방침이다.
우선 롯데면세점은 총 200억원 규모의 동반성장펀드를 조성해 우수 협력사들의 성장을 돕는 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중소 브랜드 매장 면적도 현재의 2배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현재 3600억원 규모인 본점 및 월드타워점 내 중소브랜드 매출을 2020년에는 4배 가까운 1조3500억원 규모로 늘리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