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1970년대 중반 미국의 사회학자 제시 버나드는 ‘행복한 결혼의 패러독스’란 논문을 발표했다. 버나드에 따르면 결혼한 여성들 다수는 자신이 결혼을 통해 기혼여성의 지위를 획득함으로써, 미혼여성이란 소수자의 지위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는 행복 및 만족감을 표하지만, 정작 결혼생활 자체에 대해서는 불만족을 표현하거나 불행함을 고백하더라는 것이다. 이 역설을 두고 버나드는 ‘행복한 결혼의 패러독스’라 이름 붙였다.
뒤를 이어 버나드는 이젠 고전이 된 명제, 결혼의 현실 속엔 ‘남편의 결혼(his marriage)’과 ‘부인의 결혼(her marriage)’이라는 두 얼굴이 존재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버나드의 시선에 포착된 부부는 갈등없이 평화롭게 의사결정을 하는 정서 공동체의 모습보다 젠더에 따른 권력의 불평등과 갈등이 일상화된 공간이었던 셈이다.
결혼의 역설은 기혼 남녀의 정신건강을 측정한 연구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지지받고 있다. 정신건강 지수의 평균점을 비교해 보면 기혼 남성이 가장 건강하고, 다음은 미혼 남성, 미혼 여성을 지나 기혼 여성의 정신건강이 가장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결혼을 통해 정신건강 지수가 상승하는 반면, 여성은 결혼을 통해 하강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한국에서도 동일한 조사를 진행해 보니 미국과는 다소 상이한 결과가 도출됐다. 한국에서는 미혼 남성의 정신건강 지수가 가장 높게 나타났고, 뒤를 이어 기혼 남성, 기혼 여성을 지나 미혼 여성의 정신건강 지수가 가장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의 문화적 맥락에선 ‘그래도 총각 때가 좋았지’란 기혼 남성의 솔직한 심경에 반영되어 있듯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명분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제 결혼할 것이냐?”는 질문을 결혼할 때까지 쉴 새 없이 들어야 하는 미혼 여성의 경우는 결혼제도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실제로 ‘홈 스위트 홈’이란 가족의 이상(理想)적 이미지와 지리멸렬한 일상의 현실 사이에는 항상 일정한 간극(discrepancy)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심리학자 캠벨(Campbell)과 그의 동료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이 행복이나 만족감을 경험하는 삶의 영역은 경제적 안정감, 여가, 직업(job), 그리고 안락한 주거의 순서로 나타난 반면, 우정, 가족과 결혼, 건강 등의 만족도 점수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결과는 가족이나 결혼이 행복의 필요조건이 되리란 기존의 상식적 기대를 벗어난 것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은 가족이나 우정류(類)의 관계적 가치보다 물질적 풍요로움, 경제적 안정성과 보다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확실히 결혼이란 화(化)이기도 하고 화(和)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두 사랑의 평화(和)로운 결합인 동시에 두 사람이 끊임없이 변화(化)되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화(禍)일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런 만큼 결혼엔 반드시 적응 과정이 수반되게 마련이다. “남편이 매일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난다”든가 “7년 연애 끝에 결혼하든, 7개월 만에 중매로 결혼하든, 결혼생활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경험자들의 고백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예전 부부들이 불평등을 담보로 ‘무늬만’ 평화를 유지했다면, 오늘의 부부는 서로 싸우면서도 애정을 유지해 갈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 더더욱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자녀를 모두 출가(出家)시킨 후 다시 부부만 남게 되는 ‘빈둥지 가족’ 시기가 길어지면서 부부간 애정과 친밀성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가고 있음을 기억할 일이다. 부부강간이란 말이 여전히 생소한데, 법정에서 부인을 가해자로 인정한 첫 사례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보니, 과연 ‘부부란 무엇으로 사는지’, 진정 ‘그것이 알고 싶은’ 마음 간절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