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1997ㆍ1994’처럼 성공해 1980년대 복고 이끌까?[배국남의 눈]

입력 2015-11-02 09:13수정 2015-11-0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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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손을 잡았다는 사실만으로 눈길을 끈다. 바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다. 6일 첫 방송을 앞두고 시청자의 반응이 뜨겁다. 벌써 1988년의 사건‧사고부터 패션,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응답하라 1988’이 방송되기 전부터 패션계나 대중문화계는 1988년에 주목해 복고 상품을 내놓는 등 1980년대 복고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다.

KBS ‘남자의 자격’ 등을 연출한 예능PD 신원호와 KBS ‘1박 2일’ tvN‘꽃보다 할배’ 등을 집필한 예능 작가 이우정은 ‘응답하라 1997’(2012년 방송), ‘응답하라 1994’(2013년 방송)를 통해 한국 케이블 TV 드라마 흥행사를 새로 썼을 뿐만 아니라 드라마 투르기(dramaturgy)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응답하라 1997’ 는 케이블 TV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시청률 5.1%(16회 방송)를 기록했고 ‘응답하라 1994’는 최고 시청률 10.43%(21회 방송)를 보여 케이블TV 드라마의 최고 흥행기록을 수립했다. 예능적 요소를 가미하고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강조하며 속도감 있게 전개한 드라마 트루기는 기존 드라마와 차별성을 가지며 젊은 시청자뿐만 아니라 중장년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한, ‘응답하라 1997’의 서인국 정은지, ‘응답하라 1994’의 고아라 정우 유연석 김성균 손호준 도희 등 출연진도 스타덤에 올랐다.

▲'응답하라 1988'가 성공해 1980년대 복고열풍을 일으킬까(사진=tvN)

무엇보다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의 ‘응답하라1997’ ‘응답하라1994’는 강력한 1990년대 복고바람을 일으켰다. 서태지 등 1990년대 가수와 음악을 소환시키고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다시 유행시키는 등 1990년대 복고를 대중문화의 강력한 트렌드로 부상시킨 것이 바로 이 두 드라마다.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로 촉발된 1990년대 복고는 중년층에게는 대학 시절 등 젊은 날의 추억의 기제로, 신세대에게는 새로운 대중문화의 코드로 다가가며 세대 간의 이해 접점을 확장하는 긍정적인 역할까지 했다.

이 때문에 ‘응답하라 1988’에 대한 관심이 더 고조되고 있다. 신원호 PD는 “‘응답하라 1988’은 1988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 골목 고교 친구 5인방 덕선(혜리), 선우(고경표), 택(박보검), 정환(류준열), 동룡(이동휘)과 이들 가족을 중심으로 따뜻한 가족애, 동네 골목과 이웃 등 소시민의 이야기와 아날로그식 사랑과 우정을 담을 예정이다”고 제작방향을 밝혔다.

‘응답하라 1988’이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1988년이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격변기였기 때문이다.1988년에는 국제적으로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로 인한 냉전 종식, 국내적으로 저달러·저유가·저금리 3저를 기반으로 한 경제호황과 고도성장, 그리고 1987년 6.10 항쟁의 결과물인 직선제에 의해 선출된 노태우 대통령 취임, 서울올림픽개최, 해외여행자유화정책 결정, 맥도널드 국내 1호점 설치 등이 있었다. 또한, 사회적 사건으로는 1988년 10월 16일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우리 법이 이렇다”라고 외치며 인질극을 벌였던 지강헌 탈주사건 등이 있다.

대중문화계에선 이상은이 MBC 강변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일으킨 ‘담다디’ 신드롬을 일으켰고 신세대 아이콘, 신해철의 무한궤도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관심을 끈 ‘그대에게’열풍이 일었다. 청소년들의 열렬한 지지로 소방차 등 댄스그룹들이 스타덤에 올랐고 하이틴 스타 이미연 최수지 최재성 등이 높은 인기를 누렸고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 조용필의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강애리자의 ‘분홍 립스틱’등 다양한 장르 음악이 인기를 끌었다. 개성적이고 감각적인 영상과 젊은이들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미니시리즈의 우리 안방극장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박미선으로 대변되는 개그맨 컨테스트 출신 개그맨들의 개그 프로그램이 본격화한 것도 1988년부터다.

▲'응답하라1988'의 시대적 배경이 된 1988년은 한국 정치 경제 문화의 격변기였다. (사진=tvN)

정보화 사회와 국제화, 남녀동등시대로의 이행, 권위주의 정부와 하드웨어 지상주의, 소아병적 열등감, 경직된 도그마와의 결별이 1988년을 수놓았다. 이러한 이행과 결별의 본질과 결과를 일부 전문가는 ‘개방’이라고 명명하기도 하고 일부는 ‘자유’와 ‘민주화’라고 명명했다. 또한, 기성세대와 다른 자신의 개성을 거칠 것 없이 자신 있게 드러내는 ‘신세대’ 부상이라고 특징짓기도 한다.

‘응답하라 1988’이 개방과 자유, 민주화, 그리고 신세대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문양으로 표출된 1988년을 어떻게 수놓을지도 관심거리 중 하나다. ‘응답하라 1988’이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처럼 성공을 거두고 1980년대 복고 트렌드와 시대적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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