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중 정치경제부 차장
법정시한인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통과시키려면 여유가 없다. 낭비 요소를 없애고 적재적소에 예산을 투입할 수 있도록 다듬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국민의 세금이 허투루 쓰이진 않는지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모자랄 판에 교과서에만 집착하는 야당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예결 소위 조차 구성하지 못한 걸 고려하면 국회가 정상화되더라도 시간에 쫓겨 졸속 심의로 끝날 공산이 크다. 국회 선진화법에 따라 예결위가 오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원안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 된다. 헌법에 보장된 국회 예산심의 권한이 무력화될 수 있단 얘기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야당의 보이콧이 길어질수록 심의가 부실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야당은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정부 여당이 내년 총선에서 표로 심판받을 것이라고 한다. 야당 주장대로 교과서 국정화가 잘못됐다면 국민의 심판을 받으면 될 일인데, 국회를 파행하며 자폭하자는 심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지난 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커질 무렵까지만 해도 야당은 교과서 문제를 국회 일정과 연계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약속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다음 날인 지난달 23일 대구를 방문했다. 여권 텃밭인 이곳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운동을 벌였다.
문 대표는 그러면서도 “(국정화) 고시를 막기 위해 국회 일정 연계나 예산심의 연계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안을 빌미로 사사건건 국회를 발목 잡아온 과거의 행태를 돌이켜보면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국회가 파행되기까지 문 대표의 발언이 나온 뒤 열흘이 걸리지 않았다. 손바닥 뒤집듯 여야 합의를 뒤집고 말을 바꿔온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명색이 야당 대표이자 차기 유력 대선주자의 입이 이렇게 가벼워서 되겠는가. 국민은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문 대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1일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3일 본회의와 4일 원내대표·수석대표 간 회동에 합의했다. 그러나 정부가 3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하자 곧바로 없던 일로 만들었다.
정치가 신뢰받지 못하는 건 스스럼 없이 말을 바꾸고 공약을 파기하는 정치인들의 못된 버릇이 누적된 결과다. 일을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변수가 발생할 때가 있다. 실제 약속했을 당시와 나중의 상황이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잦은 말 바꾸기는 염증을 느끼게 한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도 한 두 번은 먹혀들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반복하다보니 결정적 순간에는 진실조차 믿어주지 않았고, 소년은 양을 모두 잃고 말았다.
지금의 정치권은 양치기 소년의 교훈을 돌아봐야 한다. 거짓말은 결국 본인의 책임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