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오래 기다렸죠? 의자를 깔고 싶어도….”
차디찬 복도에 앉아 있는 기자들을 보며 국회 한 관계자가 말했다. 기자들은 맨 바닥에 앉아 취재대상을 무작정 기다리는 것을 ‘뻗치기’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특히 경력이 짧은 ‘말(末)진’ 기자에겐 익숙한 용어이기도 하다.
뻗치기가 국회 출입기자의 숙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 대표 등 거물급 인사가 나타나는 자리엔 어김없이 기자들이 몰린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다 함께 복도에 엉덩이를 붙인다.
뻗치기의 주목적은 ‘백브리핑’에 있다. 정치인들은 공식 회의석상 모두발언을 통해 주요현안과 관련된 입장을 발표한다.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면 기자들은 회의장 밖에서 무작정 기다린다. 혹시 모를 중요한 발언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기다리다 문이 열리면 기자들은 특정인을 향해 마이크를 들이댄다. 마치 벌떼가 달라붙는 모양새다. “어떤 논의가 오갔나요” “합의 됐나요” “추후 회동 날짜는 언제인가요”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진다. 기삿거리가 가장 풍부해지는 시간이다. ‘기다린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는 격언이 자연스럽게 머리 속을 스쳐간다.
정치 기사의 핵심은 ‘말’이다. 정치인이 툭 내뱉은 한 마디가 신문 1면을 장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안에 따라선 6~7시간이나 뻗치기를 하는 날도 있다.
최근 정의화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간 선거구획정 외 기타 안건을 위한 마라톤협상을 벌일 때, 기자들은 차가운 맨바닥과 협상을 벌였다. 8할이 현장에 앉아 쓰는 기사다 보니 가끔은 기자석이 낯설다. 그만큼 익숙해졌단 얘기다. 기자란 엉덩이가 가벼우면서도 무거워야하는 직업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말진 기자는 이른 아침부터 국회 안팎의 소식을 챙긴다. 당 최고위원회의·원내대책회의·정책조정회의·당정협의·조찬모임·세미나·토론회·강연회 등에 참석해 취재한 후 기사를 작성한다. 공개된 일정 외에 비공개 일정까지 꿰차고 있어야 물 먹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안테나’를 세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안녕하십니까. 이투데이 정치경제부 이광호 기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국회에 출입하는 선배들에게 인사를 했다. 타사 한 선배는 “국회에 잘 왔다”며 “같이 잘 해보자”고 격려했다. 또 다른 선배는 “웰컴 투 더 헬~”이라며 반갑게(?) 맞이해줬다. 내년엔 총선, 내후년엔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배울 게 많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19대 국회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내년 4월이면 새판이 짜여진다. 19대 의원들 얼굴을 익히기도 전에 20대 의원들을 맞이하게 생겼다. 좋은 시기에 배치됐다고 생각한다. 입법기관인 국회에 출입하는 기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