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버는 기계’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입니다. 부모로부터 동생의 대학 뒷바라지를 강요받는 큰딸의 서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진정한 등골 브레이커’, ‘가족마저 갈라놓는 등록금’이란 댓글과 함께 이 게시물은 4000건이 넘는 ‘뿜(공감)’을 얻었습니다.
살인적인 대학 등록금, 어제오늘 일은 아니죠.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사립대의 연평균 등록금은 733만원에 달합니다. 가장 비싼 곳은 한국산업기술대인데요. 한 해 등록금이 901만원이나 됩니다. 연세대(866만원), 신한대(864만원), 을지대(850만원), 한국항공대(847만원)도 등록금이 비싼 편이죠.
심지어 고려대(1241만원), 연세대(1210만원), 성균관대(1134만원), 아주대(1124만원)의 의학계열 등록금은 1000만원이 훌쩍 넘습니다.
국ㆍ공립대학 등록금은 저렴하다는 말도 옛말입니다. 울산과학기술대(632만원)와 서울대(604만원) 학생들은 한 해 6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냅니다. 서울과학기술대(552만원)와 인천대(527만원)도 500만원이 넘습니다.
대학생이 방학 기간 내내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아르바이트(지난해 최저임금 월 116만원)를 해도 한 해 등록금을 충당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결국, 어학연수나 자격증 공부는 그저 먼 나라 얘기일 뿐이죠.
그래서 우리나라 대학생은 ‘빚’이 참 많습니다.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대학생들의 학자금 대출액은 12조3000억원에 달합니다. 지난 2010년 3조7000억원(1인당 대출금 700만원)과 비교하면 4년 반 만에 3배 늘었습니다. 학자금 대출 말고 생활비 용도로 은행권에서 빌린 돈도 1조원이 넘습니다.
대학생들의 곡소리가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학교는 ‘등록금 동결로 우리도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전국 272개 대학 중 269곳이 올해 1학기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했습니다. 등록금 인상률 상한선을 1.7%로 제시하고, 동결 혹은 인하에 협조해 달라는 교육부 요청에 따른 거죠.
‘노오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헬조선’의 현실에, 대학생들의 원망은 정부에게 향합니다. ‘반값등록금’ 공약만 없었어도 이토록 허무하진 않을 겁니다. 도대체 정부는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요?
“소득연계형 반값등록금 완성으로 대학 등록금 50% 경감.”
바로 정부의 입장입니다. 최근 케이블TV와 지하철 광고판 걸린 홍보 문구인데요.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이 만든 이 광고는 지난해 정부의 ‘소득연계형 반값등록금’으로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이 50%나 경감됐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1. 지난해 총 등록금=14조원
2. 정부 재원 장학금 3조9000억원+대학 자체 장학금 3조1000억원=7조원
3. 총 등록금 절반 지원=반값등록금
교육부가 주장하는 반값등록금 실현 논리입니다. 대학생들이 체감하는 것과 온도 차가 큽니다. 현재 국가장학금은 학생 소득 수준별로 10단계로 나눠 지급하는데요. 소득이 가장 적은 1ㆍ2분위는 등록금의 100%가, 3ㆍ4분위는 75%, 5ㆍ6ㆍ7분위는 50%, 8분위는 25%씩 차등 지원됩니다. 일정 수준의 소득이 있으면 아예 못 받고요. 학점이 낮아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대학교육연구소에서 조사를 해봤더니 지난 2014년 국가장학금 혜택을 받은 학생은 전체 대학생의 41%라고 합니다. 돌려 말하면 장학금을 못 받은 학생이 60%나 된다는 것이죠.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버니 샌더스는 젊은층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치러진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17~29세 유권자 중 무려 84%가 샌더스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바로 ‘국공립대 등록금 무효화’ 공약 덕입니다.
극심한 청년실업과 부채에 허덕이는 대학생. 미국도 우리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천조국’ 청년들이 견인하고 있는 ‘민주적 사회주의자’ 샌더스의 돌풍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이유입니다.
샌더스로부터 시작된 ‘등록금 나비효과’가 한국에도 불어올까요? 체감할 수 없는 ‘대학 99% 1학기 등록금 동결 인하’ 기사 속에서 ‘등록금 부담 50% 경감’이라는 정부의 광고문구가 오늘따라 더 가슴 아프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