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2009년 2월 16일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 그의 7주기를 맞아 출간된 ‘아, 김수환 추기경’은 추기경의 삶을 온전히 담아내고자 했다.
‘아, 김수환 추기경’은 종전의 평전과 어록을 모으기만 한 것이 아니다. 감수를 맡은 조광 고려대 교수는 “이충렬 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다른 작가들이나 연구자들이 드러내지 못했던 김수환의 전체를 새롭게 드러내고자 했다”고 전했다.
이충렬 작가는 해방 이후 가장 큰 어른이자 정신적 스승인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정신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철저히 자료를 모았다. 김수환 추기경의 개인 일기, 미사 강론과 강연, 인터뷰, 개인 메모를 비롯해 그의 대화와 생각, 독백의 기록을 분석했다. 그의 동선을 파악하고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50년간의 주요 일간지, 가톨릭 신문, 잡지와 서적, 미공개 사진을 수집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시대를 실감 나게 묘사하고 독자의 감정이입을 위해 사진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저자는 각 천주교 교구와 단체의 내부 사진 자료실을 수십 차례 협조 공문을 통해 일일이 훑었다.
이를 통해 360여장의 사진을 글과 함께 책에 담을 수 있었다. 이 중 100여장은 처음 공개되는 사진이다. 1930년대 풋풋한 예비 신학생 시절부터 사제 서품식 때 부복한 사진, 청년기의 김수환 신부, 독일 유학 시절, 가톨릭시보사 사장사장신부를 거쳐 서울대교구 대주교와 추기경 서임식에 이르기까지 1970년대부터 2000년대의 주요 시국사건 현장과 인물을 아우르는 사진으로 독자를 한국 현대사의 현장으로 끌어당겼다. 김수환 추기경을 서울대교구 사무처장으로서 직접 수행했던 염수정 추기경은 “나도 생각하지 못한 사진 자료가 풍부해서 놀랐다”고 밝혔다.
또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풀리지 않았던 두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치밀한 추적과 추리를 거쳐 책에 담아냈다. 김수환 추기경은 김천성당 주임신부 자리를 내려놓고 독일로 유학을 떠나 당시 한국에서 생소했던 그리스도교 사회학을 전공했다. 그가 뮌스터대 대학원에서 공부한 그리스도교 사회학은 그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김 추기경은 일본 유학 시절 스승인 게페르트 신부의 추천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지만, 저자는 명확한 이유를 원했다. 결국, 김수환 추기경이 사제가 된 1951년부터의 가톨릭 신문 축쇄본을 한 장씩 살폈다.
저자가 찾아낸 자료에 따르면 김수환 추기경이 안동성당(목성동성당) 주임신부 시절, 문서전교에 뜻을 가지고 있다는 인터뷰가 있다. 또 1953년 대구교구장 비서신부 시절, 로마 교황청 산하 피데스통신의 대구교구 통신원에 임명됐다. 그때부터 유럽에서 전개되고 있던 ‘가톨릭 운동(가톨릭 액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가톨릭신문(당시 가톨릭신보)에 ‘가톨릭 운동을 위하여’라는 글을 5회에 걸쳐 연재하면서 한국에서도 가톨릭 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 추기경은 한국에서 가톨릭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신부를 유럽에 보내 체계적으로 공부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의문은 ‘당시 한국 천주교 교구 중 가장 작았던 신설 마산교구의 신출내기 주교가 2년 후에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되고, 그다음 해인 1969년 세계 최연소 추기경에 임명됐는가’다. 이충렬 작가는 1966년부터의 가톨릭 신문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짐작할 몇 가지 단서를 찾아 책에 담았다.
이충렬 작가는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현대사에서 몇 안 되는 정신적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약자를 사랑했고,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던 어려운 문제를 대화를 통해 풀어냈던 사회 갈등의 중재자였다”라며 “그가 생전에 보여준 삶과 정신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가치관에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과 방법 하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한편, 저자는 이 책의 인세 절반을 서울대교구 옹기장학회(이사장 염수정 추기경) 장학기금으로 기부하기로 했다. ‘옹기장학회’는 북한 선교와 아시아 복음화에 나설 인재 양성을 위해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설립한 장학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