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국민기업 포스코 ②] 주인 없는 민영화 ‘배신의 역사’ 시작…빛바랜 ‘종이마패’

입력 2016-02-2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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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회장들의 잔혹사…정권 야욕과 자리보전 욕심 결탁 ‘불명예 퇴진’

박근혜 정부의 사정수사 첫 타깃이 하필이면 왜 포스코가 됐을까. 아직까지 명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력한 분석은 ‘박근혜 대통령의 노여움’ 때문에 포스코가 ‘부패와 전쟁의 신호탄’을 쐈다는 것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주인없는 민영화를 이룬 포스코가 정치 외풍에 휘둘리면서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창업주로 불리는 박태준 전 회장 간의 ‘마패’로 상징되는 정도(正道)경영에 흠집을 낸 것에 언짢은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포스코 정도경영의 또 다른 이름은 이른바 ‘종이마패’다. 제철소 건설이 한창이던 197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에게 건네준 단 한 장짜리 문서가 포스코를 외풍으로부터 차단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건설과 설비구입 등에 관한 모든 권한을 포철이 행사한다’는 내용의 문서 상단에는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얹혀졌다.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통치자가 포철 사장에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는 사실 자체가 국영기업 공사에 이권을 노린 정치인과 유력자들의 외압을 물리쳤다.

그러나 종이마패가 포스코 홍보관에 비치된 빛 바랜 문서로 기억되면서 포스코는 정치적 외풍에 노출되고 경영실패라는 쓴맛을 경험하게 된다.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장들의 불명예 퇴진이 이어지면서 권력자들의 배신의 역사가 시작됐다.

◇포스코 역대 회장들 ‘정치외풍’ 떨었다 = 역대 포스코 회장들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자리보전을 내심 포기했다. 고(故) 박태준 전 회장은 김영삼 정부 출범 직전 무려 24년 6개월간 자리를 지키던 회장직을 내려놓게 된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후보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로 남아 있다. 고 박 전 회장은 1992년 김영삼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직을 거절하고 민자당을 탈당, 김 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를 형성했다. 이듬해 회사기밀비 7300만원을 횡령하고 포철 계열사와 협력사 20개 업체로부터 39억7300만원을 받은 혐의(특가법 위반 및 횡령)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망명 아닌 망명으로 기소중지 처분을 받았다. 당시 검찰은 고 박 전 회장이 조성한 비자금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후 고 박 전 회장의 핵심 참모 출신인 황경로 회장이 취임하지만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황 전 회장은 포스코 역대 회장 가운데 가장 단명한 인사로 꼽힌다. 황 전 회장은 거래업체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92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명식 3대 회장은 1993년 3월부터 1994년 3월까지 1년간 직을 유지했지만, 이 역시 고 박 전 회장의 측근이라는 인식 때문에 김영삼 정권의 눈치를 보며 일찍 자리를 물러나야 했다.

4대 회장에는 김만제 회장이 선임됐다. 그는 첫 외부 인사로 김영삼 정권에서 4년간 재임했다. 김 전 회장은 사상 처음이자 유일한 외부 인사 출신 회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당시 DJP연합을 통해 고 박 전 회장이 강해지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리를 물러나게 된다. 그는 1994년부터 4년여에 걸쳐 회사기밀비 4억2415만원을 유용한 혐의(업무상 횡령)로 1999년 2월 불구속 기소됐다.

5대인 유상부 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5년간 회장직을 수행했다. 연임에 성공했지만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 전격 사퇴했다. 유 전 회장은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결국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6대인 이구택 회장은 2003년 3월부터 2009년 1월까지 재임했다. 2007년 연임에 성공하며 6년가량 회장직을 수행했다. 고 박 전 회장 이후 가장 긴 재임기간이다. 이후 이명박 정부 출범 초인 2008년 포스코 정기세무조사 무마 청탁설로 검찰 수사를 받다 자진 사퇴했다.

◇정권의 야욕과 자리보전 욕심…경영진 ‘배신의 역사’ = 7대 정준양 회장은 2009년 1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자리를 보전했다. 재임기간 포스코 외형을 급격히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샀다.

결국 지난 2009년 정준양 회장이 회장으로 선임될 때 재계에 풍문으로 떠돌던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인사 개입설이 검찰 수사에서 확인됐다. 검은 이권을 노린 정권의 야욕과 자리 보전을 원하는 경영진의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정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 측근이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포스코 경영진이 정권의 핵심 인사들과의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결국 내부적으로 이전투구를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치권의 입김으로 포스코 수장에 올라 배임ㆍ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정 전 회장도 재임 기간 태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정 전 회장은 재임 때 김진일 현 포스코 사장(철강생산본부장)과 가장 많은 갈등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사장은 경력으로 보면 가장 앞선 ‘포스트 정준양’이었다.

둘 간의 갈등은 정 전 회장의 연임 시기에 드러났다. 정 전 회장은 2011년 연임을 앞두고 김 사장을 인도로 발령냈다. 그의 이같은 인사는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업계는 평가했다.

김 사장은 반발했다. 해외로 가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그는 계열사인 포스코켐텍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사장은 현재 권오준 회장에 이어 서열 2위다. 이를 고려하면 해외발령을 거부한 김 사장의 선택이 그를 권력 구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한 최고의 한 수였던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철강업계 고위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이 수장 자리에 오른 명분이 약하다 보니 내부의 반발을 쉽게 짓누르지 못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포스코의 갈등 고리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김 사장은 내부 경력으로 보면 황은연 사장(경영인프라본부장)을 앞선다. 황 사장은 포스코의 ‘진골’인 열연판매실장을 역임했다. 앞선 관계자는 “이제는 김 사장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형국”이라며 “다만 황 사장이 이번에 이사회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역대 포스코 회장들의 퇴진은 새로운 정권의 출범과 때를 같이하고 있다. 그러다 결국 보복의 경영으로 퇴임 전후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르게 된다. 3대 정명식 회장을 제외하고 역대 회장단 가운데 검찰 수사를 피해간 인물은 없었다.

8대 회장에 오른 권오준 회장의 입지도 탄탄하지 못하다는 평가다. 정치권과 결탁한 내부 인사에 밀려, 표면적인 수장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권 회장 역시 역대 회장들과 같은 정권 교체의 수혜자이자, 희생양의 길을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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