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산물 유통법 시행을 맞이하여

입력 2016-03-28 10:02수정 2016-03-29 09:12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해양수산부 김영석 장관

알랭 드 보통은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에서 다양한 일터의 모습을 묘사했는데 이 중에 ‘수산물 유통’에 대한 부분이 있다. 몰디브 해안에서 잡힌 참치가 어류가공공장을 거쳐 런던으로 이송되고, 히드로 공항 창고에서 브리스틀의 슈퍼마켓으로 갔다가 영국인 가정의 식탁에 오르는 과정이 재기 넘치게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그가 한국에 와서 고등어 유통과정을 보았다면 더 다이나믹하게 수산물 유통 과정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남해안에서 잡혀 부산공동어시장에 온 고등어는 경매를 거쳐 부산의 중도매인에게 팔린다. 그리고 노량진 수산시장 같은 소비지에 있는 도매시장으로 이동해 소비지 중도매인에게 다시 팔린다. 이후 재래시장이나 소매상점에 다시 배분된 뒤에서야 고등어 한마리는 우리 식탁 위로 올라올 수 있다. 물고기가 원양산인지 양식산인지 연근해산인지에 따라 그 유통경로는 좀 다르게 된다.

수산물은 이렇듯 생산장소나 품목에 따라 유통방법이 달라질 뿐 아니라, 성어기에 생산이 집중돼 유통물량도 들쭉날쭉 해서 그 어떤 상품보다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치고 있다. 일반 상품은 제조업자가 유통과 판매까지 담당하기도 하지만 수산물은 다르다. 어민들은 성어기에 최대한 많은 수산물을 어획해야 하기 때문에 어획한 수산물을 유통 판매까지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수산물은 산지시장이 발달했다. 산지시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진 후 소비지 시장에서 다시 거래가 이루어지는 유통구조가 만들어졌다. 수산물은 이러한 복잡한 유통과정으로 인해 유통비용이 농산물에 비해서도 높게 소요되는 편이다. 생산자는 낮은 가격에 팔아도 소비자는 높은 가격에 사야 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이같은 수산물의 특성을 반영해 유통구조를 대폭 개선하는 과정에 있다. 3월 28일 시행되는 ‘수산물 유통의 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이러한 수산물 유통구조 개선의 내용을 담고 있는 법률이다. 그동안 정부와 국회, 수산관계자들이 오랜 시간 동안 머리를 맞대고 수산물 유통체계의 전반적인 개편을 논의한 내용이 이 법률에 담겨 있다.

지금까지 수산물은 농산물과 함께 같은 법 적용을 받아 와서 수산물에 특화된 유통정책이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나 이번 새로운 법률 제정을 통해 수산물 특성을 반영한 유통관리와 지원이 가능하게 됐다. 특히 200여개의 수산물 산지위판장과 3000여명에 달하는 산지중도매인들의 법적 근거와 지위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수산물 산지위판장에 맞는 정책의 수립과 제도 개선이 가능해졌다.

정부는 현재 수산물 주요 산지에 거점유통센터(FPC)를 설립해서 생산자 중심의 산지유통 기능을 강화하고, 소비지에는 분산물류센터를 도입해서 유통비용을 절감하는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유통단계를 간소화 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로 개편하는 사업인데, 이와 관련된 사업의 구체적인 지원근거도 이번 법률에 포함돼 유통구조 개선사업이 보다 탄력을 받게 됐다.

또한 손상되거나 부패되기 쉬운 수산물의 특성을 고려해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수산물이 공급될 수 있도록 수산물 저온유통체계 도입을 체계화 했다. 수산물 직거래 시설을 지원해 직거래를 확대하고, 수산물이력제도 보다 강화하도록 하는 내용이 법률에 규정 되었다.

수산물 유통은 많은 이해 관계자가 관련돼 있어 한꺼번에 변화하기는 어렵지만, 수산물 유통법의 시행은 수산물 특성에 맞는 유통체계로 개편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정부의 정책방향을 받쳐주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앞서 언급한 책에서 ‘인류는 수천년의 노력 끝에 다음끼니를 걱정하는 일에서 벗어난 유일한 동물이 되었다’고 서술하면서 그가 참치의 유통과정을 서술한 목적이 ‘지구 반바퀴를 돌아 신비하게 온 물체와 다음에 마주칠 때는 전과는 좀 다른 생각을 해보는 것’이라고 했다.

비록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이 등장해서 창조적 영역까지 대신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지만 아직 인간은 고등어 한 마리도 만들어낼 수 없다. 식량은 아직까지 자연이 주는 소중한 선물이다. 소중한 수산물이 식탁에 정갈하게 오를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서 관리해 나가겠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