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배국남의 직격탄]

입력 2016-03-3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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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가 축복이 아닌 공포인 시대다.
퇴근 후 집 근처에서 가끔 만나는 할머니(79)가 있다. 종이 박스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끄는 꼬부랑 할머니다. 할머니의 손수레가 보이는 날이면 조용히 다가가 뒤를 민다.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가 너무 힘겹고 위험해 보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손수레를 끌다 뒤를 돌아보며 “고마워요”라며 웃는다. 자식들에 대해 몇 번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는다. 기거하는 곳을 물어도 마찬가지다. 종이 박스 등을 주워 하루 얼마를 버냐는 질문에 “많이 벌 때는 5000원, 적게 벌 때는 1000원이다”고 답한다. 그래도 몸을 움직여 이 일이라도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인다. “빨리 저세상으로 갔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면 빨리 죽고 싶습니다. 죽어버리면 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지금 이렇게 사는 것도 누굴 위해서 사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제 정말 지쳤습니다.” 일본 NHK가 2014년 방송한 고령자의 파산 실태를 조명한 ‘노인 표류사회-노후파산의 현실’을 책으로 엮은 ‘노후 파산: 장수의 악몽’에 소개된 하루 1000~5000원으로 연명하는 일본 도쿄에 거주하는 83세 다시로 다카시(田代孝)의 말이다. 일본의 독거 고령자는 현재 600만 명에 육박한다. 이중 연 수입이 생활보호 수준인 120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지만 정부로부터 생활보호를 받는 사람은 70만 명뿐이다. 독거 고령자의 상당수가 다시로 다카시처럼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 노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2015년 6월 30일 일본 도쿄로 향하던 신칸센 열차에서 한 노인이 분신자살했다. 백화점에서 35년간 일한 뒤 연금 12만 엔(약 113만 원)으로 집세(4만 엔), 식사 등을 모두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생활을 하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나섰지만, 일자리가 없어 목숨을 끊은 71세의 하야시자키 하루오(林崎春生)다.

우리는 어떨까. 일본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독거인구 중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5년 현재 27.3%로 전체 인구 중 노인 비율 13.1%의 약 2배다.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1위다. 하루 한 끼 식사로 살아가는 노인만 30만 명에 이른다. 노인 자살률 역시 OECD 국가 중 1위다. 10만 명당 55.5명으로 OECD 평균의 6배에 달한다. 하루 10명 정도의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한해 3500명 노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런데 문제는 노인복지 정책과 시스템 등 사회안전망이 부실 그 자체다. 노후 대비를 하는 노인들 역시 많지 않다. 과거처럼 자식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난으로 취업하지 못한 자식들이 부모의 경제력을 악화시켜 노후파산을 초래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빈부 격차 심화, 저출산, 고령화라는 악순환 고리가 노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빈곤층으로 전락한 ‘하류 노인(下流 老人)’의 설 자리는 없다.

장수(長壽)가 축복이 아니라 공포로 다가온다. ‘…칠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팔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구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전해라/…’가수 이애란이 부른 ‘백 세 인생’이다. 그런데 말이다. 종이 박스를 주워 생활하는 할머니는 말한다.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면 얼른 가고 싶다고. 이 땅의 수많은 고령자가 그런 생각을 한다. 심지어 노인 10명 중 1명은 저세상이 데리러 오기 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단다. 노인들이 정말 살기 힘든 나라다. 현실뿐만 아니다. 요즘에는 드라마에서조차도 노인은 없다. 출연료를 아끼기 위해 노인들을 등장시키지 않기 때문이란다. 정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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