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선사 한진해운이 결국 오늘(4일) 조건부 자율협약에 들어갔습니다. 용선료 인하와 보유지분 매각을 담은 추가 자구계획안을 마련하면서 최악의 상황(법정관리)은 피했지만, 고강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동네 강아지도 돈 물고 다니던 시절이 엊그제인데….”
기사를 보며 이런 탄식 내뱉은 분들 많을 겁니다. 수주 풍년이 한창이던 2000년대 중반, 조선사가 몰려있는 거제도는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였습니다. ‘일본보다 기술력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주문이 밀려들었죠.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조선ㆍ해운업은 그야말로 ‘효자’였습니다.
하지만 ‘1등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했던가요. 2008년부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때죠. 처음엔 금방 끝날 줄 알았습니다. 미리 받아놓은 수주도 넉넉했고요. 그러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선사들이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중소 조선사(성동조선ㆍSTX조선)는 물론, 글로벌 상위권을 휩쓸던 ‘빅3(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ㆍ삼성중공업)’도 풍전등화 신세로 전락했죠.
4월 수주 0건.
‘빅3’ 성적표입니다. 회사별로 분기마다 100척씩 수주하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형편없네요. 조선ㆍ해운업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이 갑니다.
정부ㆍ한국은행,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 6월 말까지 마련
오늘 ‘국책은행 자본확충 태스크포스(TF)’ 첫 회의 결과입니다.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지만, 정부와 한국은행은 일단 실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재원 규모는 5조~10조원 사이가 될 거라고 하네요. 기업 문제가 산업으로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둘러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우리나라 경제까지 위험해 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거죠. 현재 조선ㆍ해운업에 물려 있는 은행 돈(익스포저)이 53조9000억원이나 된다고 하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긴 해 보입니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고요? 지난달 말 이투데이에 게재된 ‘박 대통령이 꺼내 든 한국판 양적완화…안철수의 이유 있는 걱정’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겁니다.
“나랑 상관없는 일인데 뭐….”
사실 내가 먹고사는 일에 피해 주지 않으면 구조조정 이야기는 ‘남의 집 불구경’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이슈가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에 연결돼 있다면요? 얘기는 달라지겠죠. 천천히 따져보겠습니다. 구조조정이 진행되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가계소득이 줄겠죠. 수중에 돈이 없으니 은행 빚 갚기는 더 힘들어 질 겁니다. 12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경고음은 점점 커질 테고요. 그래서 부동산 전문가들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LTVㆍDTI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돈을 빌려주자는 거죠.
“구조조정은 튼튼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영원한 조건이다.”
미국 백악관에서 행정예산국 국장으로 일했던 로이 애시(Roy Ash)의 말입니다. ‘미국=천조국(국방 예산이 1000조원에 달한다는 뜻)’이 된데 큰 공(?)을 세운 방산기업 리튼인더스트리스의 사장으로도 유명하죠. 그의 말처럼 구조조정은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성장통입니다. 황금연휴를 하루 앞둔 오늘, 우리가 ‘한진해운 자율협약 개시’와 ‘한국판 양적완화’ 기사를 눈여겨 봐야 할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