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안타깝소 안타깝소. 나 스스로 안타깝소. 망친 꽃길 안타깝고, 나만 당해 억울하오. 안 할 말 못 할 말. 그걸로만 따진다면 나보다도 더 혼날 자 한두 명이 아니잖소. 국민우롱 시민멸시, 앞에서는 멸사봉공 뒤에서는 멸공봉사 영화에만 있던가요? 신문 펴면 맨 헛소리, 방송 켜면 쌍말 가득. 너도나도 그러고는 난 안 했소, 기억 없소, 오리발 내미는 자 온천지에 지천인데 나만 갖고 왜 이러나.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기자들은 왜 만났나. 후회가 막심이오, 한숨이 절로 나오.”
“틀렸소 틀렸소 당신 생각 틀렸소. 말 잘못이 아니라 생각이 잘못이오. 민중이 개·돼지라? 막 돼먹은 생각이오. 지금이 어느 땐데 그딴 생각 갖고 있소? 생각이 그랬으니 그런 말이 나온 거지. 국민이 하늘이라 옛날부터 일렀지만 하늘은 고사하고 사람대접 못 받는 자 이 땅에 얼마인데 개·돼지라 불렀으니 분노충천 아니 될까? 당신은 끝났소, 이젠 정말 끝이 났소.”
“이왕에 끝났다니 한마디만 더 하겠소. 민중이 개·돼지란 내 말이사 틀렸소만, 서로서로 벌레라는 민중들은 어쩌려오? 일베충에 맘충이라, 급식충 예 있으면 진지충은 저기 있네. 나는 설명충, 너는 극혐충, 빅뱅충, 쇼미충, 사방천지 뒤덮더니 급기야는 충드립충이 기어온다. 온갖 것에 벌레 충(蟲), 인터넷 찾아보소. 여기도 벌레 저기도 벌레, 온 나라에 벌레가 버글버글. 이건 또 어쩌려오?”
“개나 돼지 같은 육축(六畜)으로 불리는 게 벌레라고 불리는 것보다 낫다, 이 말이오?”
“그건 아니오만….”
“그럼 됐고, 빅뱅충은 빅뱅 광팬, 쇼미충은 힙합경연 쇼미더머니 좋아하는 아이들인 모양이오만 충드립충은 처음 듣소. 혹시 다른 이들에게 벌레 충 이름 붙여 욕보이기 좋아하는 아이들을 말하는 것이오?”
“잘 아시우. 그 정도면 일베충은 일베라는 인터넷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자, 맘충은 어찌됐든 내 아이만 잘되면 된다는 아이 엄마, 급식충은 학교에서 급식만 먹는 아이, 진지충은 언제나 진지한 사람, 극혐충은 극도로 싫은 사람…, 이런 건 진작에 다 아셨겠소?”
“새로 생긴 교정충과 문법충도 알고 있소. 틀린 글자 바로잡고 막된 문장 고쳐주면 교정충, 문법충 욕부터 먼저 먹소. 흰 벽 위에 바퀴벌레 안 잡는 게 이상하지, 내 벌레 왜 잡냐고 소리치는 이 세상 한심하고 한심하네. 바퀴벌레 잡는 것은 인간들의 생존본능, 오탈자를 잡는 것은 필사(筆士)들의 교정본능.”
“간섭하지 말라는 거 아니오? 언제부터 당신네가 내 삶을 책임졌냐? 내 팔 내가 흔들 테니 당신 팔은 당신이나 흔들어라, 이런 거지요. 내가 개·돼지라 부른 민중, 바로 그런 사람이오. 공동체 의식 없는 사람들로 이뤄진 세상, 그게 육축의 세상 아니오?”
“변명은 그만하소. 허튼 말을 들어주니 이젠 뒤집기를 하려 하네. 당신은 끝장났소. 벌레 이야기나 더 들어보소. 윈스턴 처칠은 ‘우리는 모두 벌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땅속에서 빛을 내는 개똥벌레 유충이라고 믿는다’고 했소. 2차 세계대전 중 처칠이 영국군을 지휘하던 지하벙커-지금은 처칠박물관이 된-에 붙어 있는 말이오. ‘지금은 벌레처럼 땅속에서 전쟁을 치르지만 나를 믿고 따르면 반드시 이길 거다’라고 나는 해석한다오. 겸손하되 눈은 바로 뜨고 있는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르오. 내가 존경하는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여행을 좋아했는데, ‘어느 나라를 다시 맛보려고 눈을 감을라치면 나의 오감이, 아니 내 몸에서 뻗쳐 나간 다섯 촉수들이 그 나라를 덮쳐서 내게로 끌고 온다’며 자신을 하루살이 동물로 비유했다오. 이런 멋들어진 벌레라면 몰라도 일베충이나 맘충 따위 혐오와 추함만 가득한 벌레는 완전 멸종이 됐으면 좋겠소.”
“너무 아는 척하지 마소. 듣자하니 적잖이 부담되오. 그나저나 나는 용서되지 못할 자요?”
“나라면 용서하겠소. 극악무도 아닌 초범 용서가 인지상정. 당신이 같지 않은 말로 국민 분노를 일으킨 건 맞지만 우리가 당신을 죽일 만큼 죄를 지은 건 아니라고 보오. 더구나 당신이 죽을죄를 지었다고 나오는데 죽은 사람 또 죽이기는 흔한 일이 아니오. 한 번은 더 기회를 주는 게 도리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당신 말대로 더 큰 물의를 빚고도 태연히 살아가는 사람도 많은데 형평이 안 맞는 것 같기도 하오.”
“고맙소. 다시 일할 기회 오면 개과천선 국리민복, 잘, 열심히, 제대로 해서 참된 공복이 되겠소. 제발 선생 칼럼에 그렇게 좀 써주시오.”
“그렇지만 다 틀렸소. 당신 친정 교육부가 당신 파면 요구했소. 국민정서 쓰나미로 덮쳤구나. 당신 연금도 날아갔소. 잘 가시오. 이제 더는 할 말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