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균의 B하인드] 구글의 지도 반출 허용은 정해 놓은 답?

입력 2016-09-0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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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2부 차장

살다보면 무리한 요구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리한 요구의 당사자가 더 강한 상대라면 고민의 깊이는 더해진다. 미국을 대표하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인 구글이 그렇다.

구글은 2007년 1월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에 지도 데이터 반출을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매번 거절당했다. 구글은 작심한 듯 6월 한국 정부에 지도의 국외 반출을 허용해 달라는 공식 신청서를 제출했다. 정부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국토교통부(국토지리정보원), 미래창조과학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행정자치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정보원 등 8개 정부 기관으로 구성된 국외반출협의체를 구성했다.

협의체는 6월 1차회의에 이어 8월 2차 회의에서는 구글의 지도 반출 허용 여부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낼 참이었다. 당시 전체적인 흐름은 협의체가 이번에도 구글의 지도반출 요청을 거부할 것이란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정부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뒤로 미뤘다. 안보에 미치는 영향과 국내 위치 정보 산업에 대한 파급 효과 등을 고려할 때 추가 협의를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다.

협의체의 결정 연기는 여러 해석을 낳았다. 과거와 달리 ‘결정 유보’라는 결정을 내린 배경은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피하기 위한 조치라는 시각이 그중 하나다. 구글이 한국 정부에 지도 반출을 공식 요청한 직후 미국 정부기관인 무역대표부(USTR)까지 나서 압박한 것을 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정리될 때쯤 다소 황당한 얘기를 접했다. 협의체가 결정 시한을 11월 23일로 잡은 것은 미국 대선(11월 8일) 이후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의도가 깔렸다는 내용이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을 고려한 포석일 수 있다는, 그럴 듯한 분석까지 곁들여졌다. 힐러리 민주당 대선후보의 경우 2010년 국무장관 재직 당시 구글이 중국 정부와 검열 행위로 마찰을 빚던 시점에 중국 정부의 해명을 강력히 요구하며 압박한 전례가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요즘 정부가 협의체에 속한 부처 담당자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정부 한 고위관계자는 “협의체에 속한 부처 내 담당자들은 구글에 지도 반출 심의와 관련한 어떤 내용도 외부에 흘리지 말아 달라는 지침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이런저런 이유에서일까. 요즘 협의체 안팎을 휘감고 있던 반대 기류가 변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당초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구글에 지도 반출을 불허할 것이란 기존 입장을 뒤집고 허용을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허용이라는 답을 미리 정해 놓고 문제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식으로 말이다.

지난 4월 ‘파나마 페이퍼스’ 사태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높은 법인세율을 피하고자 본사를 세율이 낮은 외국으로 이전하는 수법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형식은 다르지만, 구글이 한국에서 하고 있는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도 반출의 ‘키’를 쥐고 있는 협의체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채 엉뚱한 답을 내놓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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