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고’ 출시 첫 주 1위·누적 다운로드 5억… 두 달 새 닌텐도 주가 40% 올라… 콧대 높은 애플도 자존심 접고 제휴 러브콜… 증강현실 게임, 현실서 영향력 발휘
전 세계에서 ‘이것’을 다운로드 한 횟수 5억.
유저들이 ‘이것’ 때문에 달린 거리 46억㎞.
가상과 현실 세계를 이어주는 문인 ‘이것’은 블랙홀처럼 인류를 가상의 세계로 빨아들였다.
‘이것’의 정체는, 바로 올여름 전 세계 게임 마니아들을 작고 귀여운 괴물들을 좇는 사냥꾼으로 만든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GO(이하 포켓몬 고)’다.
포켓몬 고는 지난 7월 6일 미국 등지에서 출시한 지 일주일 만에 이용자 수가 2100만 명을 돌파하며 단숨에 게임 순위 1위를 꿰차는 기염을 토했다. 게임이 출시된 나라 곳곳에서는 포켓몬 고 삼매경에 빠졌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사고를 내거나 하는 사례도 끊이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정식 출시되지 않았지만 일부 지역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속초와 간절곶 등은 갑작스레 몰려드는 게이머들의 물결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포켓몬 고는 일개 응용프로그램에 불과했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게임도 해내지 못했던 ‘혁신’과 ‘혼돈’을 동시에 가져다줬다. 그 파급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게임에 대한 선입견을 바꾼 괴물 = 게임은 어두운 곳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직이며 하는 놀이다? 포켓몬 고는 이런 기존 게임에 대한 선입견을 바꿔 놓았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은둔형 외톨이들을 훤한 공원이나 인파로 붐비는 공공장소로 불러내 열정적으로 뛰어다니게 만들었다. 심지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 손을 마주치며 하이 파이브까지 하게 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145종의 포켓몬을 모두 잡은 포켓몬 고 마스터인 미국의 닉 존슨 씨는 “매일 6~8시간 이 게임을 하면서 매일 8마일(약 13㎞)을 걸었고 덕분에 몸무게가 10파운드(약 4.5㎏) 줄었다”고 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포켓몬 고처럼 단기간에 광범위하게 대중적인 게임으로 자리 잡은 사례는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망해가는 기업도 되살린 기적 = 포켓몬 고가 출시되기 전만 해도 닌텐도는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다. 콘솔 게임만 고집하다가 실적 침체로 고전, 결국 모바일 게임으로 사업의 핵심을 전향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포켓몬 고는 이런 닌텐도에 구명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켓몬 고 출시 직전인 7월 5일 1만4490엔이었던 닌텐도의 주가는 9월 2만3550엔으로 두 달 새에 40% 가까이 뛰었다. 한때는 70% 이상 폭등했으나 그나마 거품이 꺼진 수준이 이 정도다. 시가총액은 8개월 만에 3조 엔대를 넘기더니 4조 엔도 뛰어넘으며 소니를 2년 만에 추월하기도 했다.
포켓몬 고는 포켓몬 캐릭터에 친숙한 포켓몬 세대와 그 부모 세대를 아우르며 인기를 누리는 것은 물론 이처럼 투자자들까지 열광시키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포옹 = 지난 9월 7일, 애플의 2016 신제품 발표회에서는 예년과 달리 청중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애플이 내놓은 신형 ‘아이폰7’이 너무나 획기적이어서가 아니었다. 대형 스크린 화면에 인기 게임 캐릭터 ‘슈퍼 마리오’가 깜짝 등장했기 때문. ‘마리오의 아버지’로 알려진 미야모토 시게루 닌텐도 대표는 당시 청중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연단에 등장, 애플과의 제휴 사실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그는 ‘슈퍼 마리오 런’이란 신작 게임이 연말 애플의 앱 스토어에 출시되고, 포켓몬 고를 애플워치2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닌텐도가 자사 게임콘솔 기기 이외에 타사 단말기에서 슈퍼 마리오 게임을 출시하기로 한 건 처음이었다.
이는 자사 제품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콧대 높은 애플엔 사뭇 굴욕적인 상황이었다. 구글의 사내 벤처에서 탄생한 스타트업 나이언틱과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의 콘텐츠 후광을 업고 아이폰의 판매 부진을 타개하겠다는 모습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이는 탄생한 지 불과 두 달밖에 안 되는 포켓몬 고의 위력을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인 애플도 인정한다는 점에서 IT 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순간이었다.
◇지역경제에도 활력을 = 지난 7월 CNN은 비무장지대(DMZ)에서 불과 20마일(약 32㎞) 떨어진 해변 마을 속초를 집중 소개했다. 기술적인 허점 덕분에 한국에서 유일하게 포켓몬 고 게임이 가능해지면서 한산하던 작은 마을이 갑작스럽게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 CNN은 이런 풍경은 한국만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도 일부 기업들은 일찌감치 포켓몬 고를 관광 상품의 미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볼티모어의 메릴랜드 동물원은 20개의 포케스톱과 2개의 체육관을 유치, 포켓몬 사냥꾼들을 유혹했다. 이곳에 들어오려면 입장료를 내거나 유료 회원에 가입해야 하는데, 포켓몬 사냥꾼이라면 입장료 액수에 관계없이 지갑을 열 것이기 때문에 한산하던 동물원 입장에선 재미를 톡톡히 볼 수 있었다. 어떤 바는 영업장에 포케스톱이나 체육관을 유치해 포켓몬 사냥꾼들을 유인해 매상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CNN은, 공상과학(SF) 영화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단순 재미만 주지만 AR 게임은 이미 현실 세계의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신호탄이라고 해석했다. CNN은 AR 게임의 컨트롤러는 돈만 내면 실제 결과와 경제적 의사 결정을 자신의 의도대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전지전능한 입장이라며 아주 가까운 미래에, 선출된 공무원이나 심지어 대자연도 똑같이 할 수 있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