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남성의 육아휴직이 늘고 있다” “유리천장이 깨지고 있다” “여성이 향후 경제성장의 동력이다”라고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 구호에 지나지 않는 듯 여겨지는 건 정말 우리의 주변 환경이 바뀌는 것을 구체적으로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여전히 강압적이고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유지되고 있는데 여성의 숫자만 늘어난다고 양성평등이 이뤄지진 않는다. 인식이 바뀌면 삶의 형태가 바뀌고 조직의 문화가 바뀐다. 반대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조직의 문화부터 바꿀 필요도 있다. 양성이 평등한 조직문화란 그렇다면 어떤 것일까. 사례가 적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이투데이 기획취재팀은 그런 조직을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첫 번째 찾아간 조직은 H&M코리아. 스웨덴 스톡홀름에 본사를 둔 글로벌 패션기업 H&M그룹은 1947년 설립돼 오랜 역사만큼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자랑한다. 국내에는 2010년 들어왔다. 얼링 페르손(Erling Persson)이 설립한 H&M그룹은 전 세계 63개 시장에 4135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 수는 14만8000명에 달한다. 한국 내에선 28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며 83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H&M코리아는 본사와 동일한 가치관, 경영이념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직문화 역시 닮을 수밖에 없다. H&M은 7밸류(7value)라고 불리는 7가지의 가치를 중시한다. △사람에 대한 믿음 △우리는 한 팀 △지속적인 향상 △솔직하고 열린 마음 △기업가 정신 △단순명료함 △비용절감 의식. 7가지 가치는 조직 내 정책과 제도 등에 반영돼 수평적이고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H&M코리아 가보니=서울 중구 소공동에 있는 OIC빌딩 15층. H&M코리아 본사에 들어서면 새하얀 벽면 위에 강렬한 붉은색의 회사 로고가 한눈에 들어온다. 흰 타일 바닥 위에 놓인 붉은 소파와 조화를 이룬다.
직원들 가슴에는 네모난 모양의 명찰이 달려 있다. 한국 이름은 아니다. 자신의 이름 대신 별칭을 쓰면서 뒤에 ‘님’을 붙여 서로를 부른다. 원활한 업무 진행을 위해 팀장 격인 ‘매니저’라는 직책이 있지만 사내에선 부를 일이 없다. ‘님’ 호칭 문화는 수평적인 질서를 형성하는 것과 동시에 업무에 따른 책임을 안겨 줘 직원 개인이 성장할 기회를 만들고 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상명하복 조직문화를 탈피하고자 처음으로 노력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피드백 문화’를 통해선 동료직원 간의 공정한 평가를 진행한다. 인사팀은 업무평가 시 조직원들에게 “동료로부터 본인의 피드백을 먼저 받아 오세요”라고 주문한다.
외국인도 많고 인종도 다양하다. H&M그룹 본사 차원에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어 국가 간 이동도 잦다. H&M코리아에는 6개국(스웨덴, 폴란드,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캐나다)의 다양한 인종의 직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여성 직원 비율은 상당히 높다. 전체 직원 중 약 60%에 이르고 여성 팀장급 비율은 72%에 달한다. 패션 브랜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성 직원들이 출산이나 육아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고 실력과 경력개발의 의지만 있으면 성장할 수 있는 조직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직원들의 경력개발을 돕는 프로그램도 잘돼 있다. IOD(Internal open date)를 연 1회 시행, 코칭 섹션을 통해 커리어 개발을 지원한다.
송원 PR부문 팀장은 ‘H&M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매력적이라고 소개한다. 송 팀장은 “근무한 지 5년 되는 해부터 H&M그룹의 수익 증가분 일부를 나눠 받기 시작하고 배당금은 만 62세가 될 때 받는데, 근속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 많은 금액을 수령하게 된다”면서 “소속 국가나 직책, 연봉, 고용 형태에 관계없이 H&M그룹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적용되는데 한국지사의 경우 100명 이상 가입돼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