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주)크로스컬처 대표, 역사작가
‘자백’은 MBC 해직 언론인 출신 최승호 피디가 한국, 중국, 일본, 태국 등 4개국을 넘나들며 약 40개월간의 추적 끝에 드러나는 간첩조작 사건의 실체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자백’은 역사극은 아니다. 아직 역사로 등재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이 사건 역시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인터뷰 형식을 빌려 ‘자백’에게 말 걸어봤다.
△최순실 게이트로 손해 본 거 아닙니까? 다큐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데?(웃음)
“그런 점이 없잖아 있지요.(웃음) 그러나 간첩조작 사건 역시 박정희와 박근혜 정권하에서 벌어진 일들이라 오히려 더 관심 요소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영화관 숫자는 외부에선 다큐 영화가 이 정도 스크린 수를 확보한 것도 대단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 영화의 관객 점유율이나 흥행 추이로 봤을 때 다른 영화보다 두세 배는 더 열어줘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향후 ‘자백’ 이 한꺼번에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지 못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스테디한 영화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관객 수 목표치는 어느 정도입니까?
“뭔가 임팩트를 주기 위해선 백만 명까지 봤으면 합니다. 현재는 오늘까지 십만 명 조금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광고를 한다고는 했는데 다른 방송사들이 거의 안 다뤄 줘 아쉽습니다. 공중파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도 전혀 다루지 않았습니다. 친정인 MBC조차 외면하더군요.”
△이제는 최승호 감독이라고도 많이 부르죠? 액션 저널리스트라는 새로운 호칭도 만드신 것 같던데.
“어쩌다 보니 이 판에선 감독이라 불립니다. 그러나 저의 본업은 기자정신에 입각한 프로듀서입니다. 액션 저널리스트 역시 홍보 포인트로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붙인 겁니다.”
△평소 다큐를 많이 보시는지요?
“영화는 처음이라 작법을 참고하려고 많이 봤습니다. 마이클 무어의 작품도 많이 봤지만 마이클 무어 스타일을 그리 좋아하진 않습니다. 그의 다큐는 쇼맨십이나 퍼포먼스 중심이라 팩트를 중요시하는 저에게 꼭 맞지는 않더군요. 사실관계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꽤 있어요.”
△아이템 측면에서는 사실 간첩조작이라는 소재가 예전부터 있었던 거라 새롭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느껴지진 않던데요. 결국 이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을 바꾸자는 건가요? 영화 포스터에도 그렇게 표현했던데요?
“그렇습니다. 간첩 조작사건이 박근혜 정권하에서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게 놀랍고 이것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본질을 보여 주는 거라 생각합니다. 분단의 현실 때문에 간첩조작이 권력 재창출에 이용되고 활용되고 있고 끊임없이 복사되고 있는 거죠. 단지 탈북민을 간첩으로 조작했다는 차원이 아니라 이 사건 하나가 우리 현실의 핵심적인 모순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공포를 이용해 국민들을 겁박하는 게 지금까지 중앙정보부나 국정원의 모습이었죠. 조작을 해서라도 간첩이 지금 여기에 있다고 보여주는 것이고, 권력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를 억누르려는 목적으로 이용되었고요.”
△간첩조작의 텃밭이 재일동포에서 탈북민으로 옮겨왔다고 생각합니다. 운동권 학생을 간첩으로 엮기에 무리수가 있었을 거고요. 이번에 다큐를 제작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제작비 조달도 쉽진 않았을 텐데요.
“방송에서 다루지 않아 광고를 더 하고 싶은 아쉬움은 남았어요. 제작비는 3년 동안 3억 원 정도를 썼고 국민들에게 4억3500만 원을 모금하였습니다. 모금액은 상당 부분 시사회 비용으로 나갔고요. 손익분기점은 관객 20만 명 정도가 돼야 합니다. 제작 시 애로사항은 국정원 취재원들이 사실관계를 확인해주지 않아서 어려웠고, 북한에 있는 한준식(탈북해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다가 자살하였다. 그러나 그의 죽음엔 의혹이 많다) 씨의 딸과 통화하는 과정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자백’을 보면서 시원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들이대며 돌직구 질문을 던지는 장면인데요. 요즘 기자들에게선 보이지 않는 모습이죠.
“원래 언론인은 그래야 하는데 기존 언론사에서 그렇게 취재하면 상층부에서 커트되겠죠. 뉴스타파만이 가능한 취재 방식인 거죠. 기자들도 놀랍니다. 검사들 법정 출입 길목에서 검사에게 취재하는 걸 보고 법조 출입기자들도 놀라고 저렇게도 할 수 있고 또 저렇게 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드나 봐요. 원래 그렇게 해도 되는 거고요. 외국 언론들도 다 그렇게 합니다.”
△해직됐는데, MBC에서 다시 와서 ‘PD수첩’ 만들라 하면 갈 용의는 있으세요?
“jtbc는 최근에 특종도 했던데, 현재 MBC 상황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안타깝고 안 좋죠. 하루빨리 공영방송으로 회복돼야 합니다. MBC에서도 지금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돌아가야죠. 덧붙이자면 뉴스타파에는 KBS와 MBC를 그만두고 온 훌륭한 기자들이 많습니다.”
△조작 사건은 이승만 정권하 조봉암 사형선고 때부터 시작됐지만 이제 보수쪽에서도 재미를 볼 만한 거리는 거의 없고 선거에서 지지율에 미치는 영향도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인데요.
“미시적으로 보자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정원 직원들에게 보상이 컸습니다. 돈까지 줍니다. 간첩을 잡으면 액수가 상당히 커요. 수사비, 운용비도 많이 나오고요. 이러니 가짜 간첩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국정원은 억울한 희생자를 막는 것보다 조작된 간첩이라도 나와야 좋다고 조직적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무죄 판결이 두 개나 나왔는데 조치한 게 거의 없어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탈북자 간첩조작을 만든 원조 격입니다. 아마 알면서도 그렇게 놔둔 게 아닌가 싶어요. 대공수사 국장 방을 검찰이 들어가지도 못한 수사 결과이니 볼 게 있겠습니까?”
△또 다른 작품도 구상하고 있나요?
“영화는 너무 힘들어요. 개봉하면서 관객에게 다가가는 과정이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MBC 있을 때는 방송 나가고 쫙 퍼지면 끝났는데… 그리고 술 마시면서 보면 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몇 십 명 관객에게 다가가려고 먼 지방까지 내려가는 등 홍보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물론 소중한 경험이고 사실 그걸 즐기기도 했죠. 관객의 느낌을 그대로 들을 수 있었으니까. 다음 작품은 재벌에 대한 취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당장 뭐 하겠다는 건 아직 없고요.”
△마지막으로 차기 대선에 대해서 묻겠습니다. 어떤 대통령을 원하십니까?
“민주주의를 몸으로 아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사람이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이 ‘자백’을 본 후 ‘좋은 영화다. 꼭 봐야 할 영화다!’라고 생각해 주셔서 뿌듯합니다. 많은 분들이 보시고 현실을 바꿔야 대한민국도 바뀌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