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11월 첫째 주에 이어 둘째 주 역시 5%를 기록했다. 대통령 지지율 조사 역사상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 이 설문조사는 오차범위가 3.2%다. 박 대통령의 철옹성같은 '콘크리트 지지층'은 앙상한 철골만 남아 오차범위에 근접하는 규모로 내려앉은 것이다. 소용돌이 같은 정국 속에 굳건히 박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내는 대한민국 5%, 마지막 남은 콘크리트 지지층을 찾아 기자는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여기라고 뭐 다른줄알아? 모래알에서 바늘 찾기지”
탑골공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어르신 민심’의 바로미터다. 들어서자마자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햇볕을 쬐는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팔각정에 옹기종기 앉은 노인들 중 ‘한국일보’를 들고 있는 노인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한다는 72세의 A씨의 첫마디는 이랬다. “여기 노인네들이라고 뭐 다를줄 알아? 박근혜 대통령 좋아하는 사람 찾르려면 여기서도 모래알에서 바늘 찾기여”
이 한마디에 기자는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분명 콘크리트 지지층의 대다수가 60대 이상인데 이곳마저도 모래알에서 바늘찾기라면, 대체 마지막 지지자들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A씨는 신문을 펼쳐 한 기사를 보여주었다. “여 봐라. 대구 경로당에서도 대통령을 그 가시나라고 부른다잖여. 이제 노인네들도 박근혜 좋아하는 사람 한 놈두 없어.”
A 씨가 말을 마치자 팔각정 노인 중 한 사람이 “여기서 이럴게 아니구 우리도 광화문 가야돼!”라고 말을 꺼내자 노인들은 “그래 머릿수 하나라도 채워야 되는데”라거나 “우리같은 사람들도 이런 데 가야해”라며 말을 보탰다. 마지막 5%를 찾으려는 첫번째 시도는 그렇게 실패했다.
◇“죄는 맞는데, 임기 중에 물러나는 건 좀 그러니까...”
이번엔 입구 근처 탑골공원 독립선언기념비 앞에 앉은 노인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강서구 가양동에 산다는 90세 노인은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이요!”하고 큰 소리로 질문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가 느릿느릿 꺼내놓은 대답도 팔각정 노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죄가 있으면 물러나야지…. 지금 비리가 이렇게 많은데.”
하지만 옆에서 끼어든 B 노인(87세, 경기 의정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대통령이 내려오는건 산 넘어 산이란말이여. 쉬운일이 아니야.” 기자는 마지막 5%를 찾았다는 생각에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그를 ‘마지막 지지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었다. “5%는 사실 0점 아니야? 그건 맞지만 대통령이 내려오는건 ‘산 넘어 산’이야. 죄가 없어서 그런게아니고 내려오면 혼란스러우니까 그런거지.” 그는 박 대통령의 지지자가 아니라 국정의 혼란을 막고싶어하는, 말하자면 ‘안정론자’였다. 이런 유형의 사람을 굳건히 박 대통령을 믿는 ‘마지막 지지자’라고 볼 수는 없었다. B노인의 말이 끝나자 “그거는 아니지!”하면서 옆의 노인들이 벌떼처럼 반론을 제기했고, 이후 B노인은 자신의 ‘안정론’을 더이상 주장하지 않았다.
그 뒤에도 탑골공원에서 만난 몇몇의 노인들에게서 ‘하야’나 ‘퇴진’은 있을 수 없다고 못박는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드문드문 있지만 ,이들 역시 ‘마지막 지지자’라기보다 ‘안정론자’에 더 걸맞는 사람들이었다. 경기도 안양에서 온 82세 C씨는 “젊은이들은 잘 모르지만 우리같이 일제랑 6ㆍ25 겪은 사람들한테는 안정이 최고야”라며 “대통령 내려오면 불난 집 부채질이고 얼마나 시끄럽겠어. 아니 여태 4년을 참았는데 1년을 못 참어?”라고 말했다. ‘여태 4년을 참았는데’라는 말이 기자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때 탑골공원 입구에선 마이크 테스트 음성이 퍼져나왔고, 이를 본 노인들은 “저, 저…. 또 XX이네 그냥 콱…”하며 거부감을 표했다. 무엇인지 묻자 맨날 똑같은 얘기로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이라며 불평했다.
‘자유통일희망연합’이라는 단체의 정기집회였다. ‘국가정체성확립’, ‘반통일세력척결’, ‘국민통합!’ 등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들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북한 내통 의혹을 규탄하고 있었다. 이들이 박 대통령의 마지막 콘크리트 지지층인것은 아닐까? 몇몇의 회원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보수 성향을 가졌을 듯한 이들은 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말을 꺼내자 시선을 회피했다. 자유통일희망연합 회원 D씨는 이 질문에 “대통령 잘못은 잘못이다”라며 “우리는 북한의 핵위협을 규탄하는 단체고, 현 정권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고싶지 않다”며 더이상의 답변을 거부했다.
탑골공원에서 마지막 콘크리트 지지층을 찾는데 실패한 뒤 또다른 노인들을 찾아 종묘에도 가보았다. 하지만 그곳의 노인들은 도끼자루 썩는줄 모를 정도로 바둑에만 심취해 있었다. 종묘를 돌아나오는 길에 화장실 앞에서 한 무리의 노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그게 배신을 한거지 뭐야…. 옛날에 장세동이 같은 애들은 의리가 있었는데 말이야.” 일말의 희망을 걸고 대화를 시도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하야 요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이 노인들은 “내려오면 니가 대통령 할거야?”, “지금 우리나라가 전쟁중인 나란데 대통령을 내리면 어떻게 하라는거냐”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확실히 진짜 ‘마지막 콘크리트 지지층’이 맞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몇마디 더 대화를 시도하자 이들은 “문재인이 같은 XX가 뭘 안다고…”라거나 “개나소나 대통령하고 싶어서 뒤흔드는거지”와 같은 푸념을 남긴채 기자의 질문을 뿌리치며 다른 곳으로 황급히 자리를 옮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