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호 국제부 차장
역도산(1924.11.14~1963.12.15)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추앙받는 프로레슬링 영웅이다.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난 그는 탁월한 씨름 실력에 일본의 한 부농에게 양자로 들어간 뒤 스모 선수가 됐다. 역도산이라는 이름도 이때 붙은 것으로, 본명은 김신락이다.
일본인 출신이 아니면 ‘요코쓰나(橫繩, 천하장사)’가 될 수 없다는 말에 좌절해 스모계를 벗어나 프로레슬러로 진로를 바꿨다. 하와이에서 맹훈련을 하고 1953년 귀국해 일본프로레슬링협회를 설립했다.
미국 프로레슬러들을 초청해 강인한 체력과 가라데촙으로 잇따라 때려눕히면서 전후 좌절했던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편지 봉투에 ‘일본 역도산’이라고만 써도 그에게 전달됐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그는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로 불린다. 1958년 세계선수권자인 J.S.루테스를 물리치고 헤비급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그러나 1963년 12월 도쿄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야쿠자 청년의 칼에 찔려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6·25전쟁으로 피폐했던 한국에서도 서양의 거인들을 무찌르는 역도산은 영웅과 같은 존재였다. 불운한 최후를 맞았지만 제자들이 한국과 일본에서 맹활약하면서 프로레슬링은 1960~1970년대 전성기를 맞았다. 일본인 제자로는 무하마드 알리와 대전을 펼친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가 있다. 한국 프로레슬링의 아버지인 김일은 역도산의 후계자다.
파란만장한 인생에 불같은 성격이다 보니 아직도 여러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일본 유도 영웅 기무라 마사히코와 1954년 대결을 펼쳤을 때 갑자기 역도산이 각본을 깨고 기무라를 거칠게 공격해 KO시켰다. 이는 지금까지도 화제에 오르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적 선수인 재일동포 장훈과도 막역한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