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조사’ 초유의 총수들 증인 채택… ‘기업 이미지 타격’
‘피해자와 피의자’의 갈림길에 놓인 그룹 총수가 줄줄이 국회 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되면서 재계가 지난 1988년 ‘5공 청문회’ 이후 28년 만에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최순실 사태라는 메가톤급 ‘악재’로 한국 경제가 휘청이고 있는 상황에서 9대 그룹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이어 국정조사 증언대까지 서면서 ‘경영 공백’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또 국회가 기업 총수를 대거 불러내 군기 잡기식 호통치는 관행을 대물림할 경우, 향후 정상적인 경영활동까지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국조 TV 생중계… 총수 이미지 실추 불가피 = 국회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가 21일 9대 그룹 총수들을 국정조사 증인으로 대거 채택했다.
지난해 7월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비롯,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인 허창수 GS그룹 회장까지 총 9명이다.
지난 1988년 5공 청문회와 1997년 한보 청문회 때 일부 기업 총수들이 국회에 나온 적이 있지만 5대 그룹을 포함해 주요 그룹 총수가 무더기로 불려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총수들은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국정조사 현장에서 국회의원들의 매서운 추궁을 직접 대응해야 한다. 박 대통령과 관련된 비리나 추가 의혹이 제기되면 이미지 실추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외신에까지 보도될 경우, 기업 이미지까지 타격받게 되면서 ‘기업 활동 옥죄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총수 대부분 증인 참석할 듯… 분주해진 대관팀 = 총수들은 이번 국정조사에 불참할 경우 비판 여론에 직면할 가능성이 큰 만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한 그룹 대관업무 담당자는 “아직 특위에서 최종 의결이 되지 않아 출석 여부를 말하긴 이르지만, 국민여론과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증인 명단이 의결되면 출석을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다른 기업 대관팀과 얘기를 나눠봤는데 증인으로 출석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이런 분위기를 회사에 전달했다”면서 “(우리 측도) 출석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각 기업별 대관팀은 벌써부터 예상 질의 등을 파악하는 등 청문회 준비에 분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은 국조에 최대한 성실히 협조하되 무분별한 의혹 제기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최순실 후폭풍, 경영활동 사실상 중단 = 각 그룹은 당장 ‘트럼프 쇼크’에다 ‘미국 금리인상’과 같은 초대형 변수를 앞둔 상황에서, 이번 국조특위와 특검 등의 일련의 총수 조사가 경영 공백이라는 심각한 파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가도 모자를 판국에 정치적 사안 때문에 총수들의 발이 묶였다는 것. 이는 결국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 및 조직재편 연기와 투자 위축 등으로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시각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초 출시할 예정인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8’ 성공에 기업 명운을 걸고 있다. ‘갤럭시노트7’ 단종으로 인해 브랜드 가치가 추락한 상황에서 차기작의 성공은 필수다. 최순실 게이트로 오너가 검찰에 불려가는 모습은 떨어진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2년 연속 판매량 목표 달성에 실패한 현대자동차도 비상이다. 내년에도 시장 사정은 더 어려울 것으로 보여 이번 총수 증인 출석이 큰 부담이다. 현대차 글로벌경영연구소는 내년 국내 시장 전체 판매량이 올해 180만 대에서 176만 대로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주의 선언은 국내 자동차와 전자, 화학 등 재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