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국립공원에서 촬영된 NGC 방송을 보다 보면 어미 치타들은 한 번에 2~3마리의 새끼를 낳고, 사자와 하이에나의 눈을 피해 새끼 키우는 데 사력을 다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어미 치타가 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 톰슨가젤 같은 먹잇감을 사냥했지만, 그 사냥감이 100% 어미 치타의 것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어미 치타보다 훨씬 강한 사자 혹은 하이에나 같은 약탈자들이 수시로 사냥 현장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약탈자들로 인해 어미 치타가 비록 사냥에 성공하더라도 먹이를 빼앗겨 자신과 새끼들이 굶어 죽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필자와 인연이 되어 상담했던 기업인 중에는 어미 치타와 같이 예리한 직감과 민첩한 기회 포착 능력으로 유망한 신제품이나 획기적인 신기술, 혹은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는 경우가 꽤 있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자금 부족, 동업자의 배신, 핵심 직원의 경쟁사 전직 등의 이유로 땀 흘려 개발한 제품, 기술, 새로운 사업영역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그 과실을 타인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는 ‘불운한 치타형(形)’들도 있었다.
반면에 남이 애써 노력해 이룩한 제품과 기술, 시장, 사옥 등을 잘 활용해 순식간에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영악한 하이에나형(形)’에 속하는 사례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역학에 입문하기 전 필자는 이러한 사례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매우 혼란스러워한 적이 있다.
사실 역학적으로 보면 원리는 간단하다. ‘불운한 치타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 시점에 재운(財運)이 좋지 않았던 것이고, ‘영악한 하이에나형’에 속한 사람들은 그 시점에 재운이 뒷받침됐을 뿐이다. 그러나 이 차이가 당사자들에게 미치는 결과는 엄청나다.
1996년 D사의 H사장과 개발자 S씨는 당시 세계의 어떤 회사도 생각지 못했던 획기적인 IT제품을 개발한다. 바로 소리를 디지털화해 재생할 수 있는 MP3 플레이어다.
이들이 생각해낸 MP3 플레이어는 음악을 디지털화해 컴퓨터나 카세트 플레이어가 아닌,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소형 기기에 저장해 횟수에 상관없이 언제라도 양질의 품질로 재생할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카세트테이프나 CD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당시 D사는 중소업체로 MP3 플레이어를 대량 생산하고 광고ㆍ홍보에 적극 나서기에는 자금 여력이 없었다. D사는 이의 대안으로 재벌인 S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정보시스템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대신 특허권을 S정보시스템과 공동 소유키로 한다.
자금을 어느 정도 확보한 D사는 1998년 3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계적인 IT기술 전문박람회 ‘세빗’에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 ‘F-10’을 출품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경제적 상황은 너무나도 좋지 않았다. 이들이 제품을 해외 전시회에 출시한 1998년 3월은 한국경제가 본격적으로 IMF 외환위기의 소용돌이에 접어든 후였다.
따라서 기술 측면에서 혁신적인 제품이었음에도 매출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자금 지원 역할을 맡았던 S정보시스템도 도산위기에 빠져 D사에 대한 자금을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했다.
D사가 이 같은 상황에 처해 직원들 월급도 제때 주지 못하고, 폐업을 고민할 때 재미교포가 운영하던 M사는 MP3 플레이어의 장래성을 알아채고 자금난에 빠진 D사로부터 MP3 플레이어 관련 특허권을 사들인다. 특허권을 넘겨받는 대가로 M사가 D사에 지급한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던 D사가 M사와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만족할 만한 수준의 금액은 아닌 것으로 추측되고 있을 뿐이다.
M사는 재미교포 L씨가 세운 연간 매출 7억 달러 규모의 세계적 그래픽카드 업체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IT기술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의 특허권은 미국 기업으로 넘어갔다.
MP3 기술과 제품이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됐지만, 개발자들의 자금난으로 특허권은 모두 미국으로 넘어갔고 최종 과실도 그들이 거두게 된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MP3 플레이어를 개발했던 D사, S정보시스템 모두 남아 있지 않다. 세계는 혁신적인 MP3 플레이어로 애플의 ‘아이팟’ 정도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MP3 플레이어가 시장에 선보였던 초기 단계부터 제대로 자금 지원을 받았더라면 최초 개발하고 시판에 나섰던 D사와 S정보시스템이 세계적 기업이 됐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IT기기 업체들로부터 엄청난 특허료를 챙겨 CDMA 원천 기술을 가진 미국의 통신회사 퀄컴에 버금가는 회사로 성장했을 것이라는 가설도 내놓고 있다.
이 사례에서 D사는 혁신적 아이디어로 먹잇감을 사냥했지만, 힘이 빠져 하이에나에게 빼앗기는 전형적인 ‘불운한 치타형’이다. 반면 시장이 상품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제품 초기 단계에서 자금난에 빠진 한국 개발업체로부터 저렴한 가격에 MP3 핵심 기술의 특허권을 사들여 거액을 챙길 수 있었던 미국의 M사와 스티브 잡스는 ‘영악한 하이에나형’이라고 볼 수 있다.
사주를 분석해 보면 ‘불운한 치타형’ CEO들은 투자 결과가 드러나는 시점에서 재운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영악한 하이에나형’ CEO들은 재운의 뒷받침을 받는 것이 발견된다.
현실에서는 빛나는 아이디어(폭발적인 순발력 혹은 재빠른 기회포착 능력)가 있으나 결과를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불운한 치타형’ CEO들이 많다. 냉정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불운한 치타형’은 동정을 받을 수 있겠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대접은 받지 못한다. 매우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자처럼 보이지만 어떠한 과정을 거치든 최후의 과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차지하는 ‘영악한 하이에나형’ CEO들이 언제나 인정받고 주목받는다.
자신이 애써 노력해 확보한 좋은 기회를 남에게 빼앗기는 ‘불운한 치타형’이 되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재운이 받쳐주지 않는 시기에 투자하면 애만 잔뜩 쓰고 결국 먹잇감을 뺏기는 ‘불운한 치타형’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재운이 뒷받침되는 시기에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불운한 치타형’이 될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자신의 사업분야에서 기회 포착은 잘하지만 결국 손해 보는 ‘불운한 치타형’인가, 아니면 어떤 과정을 겪든지 결국 실속을 챙기는 ‘영악한 하이에나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