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 임직원 가족 초청 직장체험… 직장여성 고충 이해하는 ‘공감의 자리’
다른 의견, 다른 선택은 무리 안에서 무난한 걸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에선 대체로 쉽지 않다. 아직까지 남성이 다수인 조직이 많고, 특히 간부급 이상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여성들은 그래서 조직 내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할 때마다 수많은 자기검열을 하게 마련이다.
남성 중심 조직문화와 질서가 견고하다면 그걸 따르는 수밖에. 그래서일 것이다. 유리천장을 깼다는 여성들이 오히려 남성보다 더 남성적인 사고와 태도를 갖고 있는 걸 종종 목격하게 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 조직문화 형성엔 ‘보이는 손’이 필요하다. 채용 단계에서의 양성평등은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다. 그러나 능력 있는 여성들도 점점 하나둘 사라져가는 데엔 여성들이 조직에 스며들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한다고 판단해서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스탠더드차타드(Standard Chartered: SC)그룹은 2005년 제일은행을 인수하면서 소매금융까지 한국 내 영역을 넓혔다. 외국과 한국도 다른데 다른 조직까지 합병해 태어난 은행이다 보니 다양성(Diversity) 존중은 필수일 수밖에 없었다. SC그룹 자체가 그렇다. 160여 년 역사 속에서 전 세계 70개 시장에 진출해 있는 만큼 성별과 인종, 민족 등의 다양성을 존중해야만 지속가능할 수 있었다.
다양성과 함께 가야 하는 ‘짝’이 있다. 바로 포용성(Inclusion). 다른 말로 하면 ‘인정을 받는다’일 수 있겠다. 서로의 차이점과 차별점을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기 위해선, 다시 말해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으려면 포용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SC제일은행에는 ‘다양성과 포용성(D&I) 위원회’가 있다.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임이다.
“다양성에는 여성과 남성, 성소수자 같은 성별도 분명 있지만 인종, 또 나이 든 선배들과 젊은 후배들 사이의 세대 간 다양성도 있습니다. 저희 D&I 위원회는 양성평등 실천을 위한 젠더(Gender) 사업부, 일과 가정 생활의 균형을 지향하는 워크 앤드 밸런스(Work & Balnace) 사업부, 젊은 직원들의 직장 생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영 스태프 인게이지먼트(Young Staff Engagement) 사업부 3개로 구성돼 있고, 저는 이 가운데 젊은 직원들 융화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SC제일은행 운영리스크본부 황민경 상무보의 설명이다.
은행 내 양성평등은 실천 단계에 들어선 지 꽤 됐다. 2020년까지 상위 관리자(부장 이상) 가운데 여성이 30%는 되도록 하겠다는 목표는 절반쯤 달성했다.
황민경 상무보는 “조직문화라는 건 조직에서 구성원들이 출세(승진)를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직장이 수직적 구조를 갖고 그 구조의 각 층마다 관리자들이 있게 마련인데, 이 관리자들이 승진을 결정하죠. 라인 관리자에 남성들이 많고 그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업무나 네트워킹이 이뤄지면 당연히 남성들이 더 승진을 많이 하겠죠. 그게 어떤 민족, 지역, 연령대가 될 수도 있고요. SC그룹의 경우 빌 윈터스 회장이 나서 ‘성 다양성과 포용성이 SC 브랜드를 위한 근간’이라고 강조하는 만큼 양성평등을 위한 노력은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밝혔다.
출산과 육아를 돕는 휴직, 휴직자들도 지속적으로 회사 업무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근황을 나누는 모임을 하는 리커넥팅 데이(Reconnecting Day)가 마련돼 있는 건 물론이다. 은행 밖 활동도 여심이다. 숭의여고 학생들이 은행 선후배들로부터 1년간 멘토링받는 프로그램이 계속되고 있다. D&I 위원회 내 여성 네트워크에는 부장/지점장급 여성 관리자 150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리더십 교육도 네트워킹만큼 강조된다.
1년에 한 번 자녀를 은행에 초청하는 ‘슈퍼 히어로 데이(Super Hero Day)’는 특히 일과 가정 양립에 힘들어하는 여성들에게 도움이 된다. D&I 위원장인 박현주 부행장은 “이 행사에 손자들 양육에 도움을 주시던 시어머니 한 분이 ‘며느리가 이렇게 힘들게 출퇴근하며 열심히 일하는구나 깨달았다.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돕겠다’라고 하셨던 말은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황 상무보는 자원해서 후배 육성 프로그램을 하겠다고 나선 경우. 성과는 늘 매우 좋았지만 차갑고 공격적이란 평을 개선해 보기 위한 선택이었다.
“매우 목적지향적인 사람이었던 제게는 다양한 후배들과 만난다는 게 어색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활동을 같이하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젊은 직원들은 경영진을 만나 자신들의 생각을 전할 길이 없고 그래서 불만이 생긴다는 걸 알았어요. 식사나 운동 등을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의외로 좋았어요. 선배나 후배 그룹에서 모두. 조직문화가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젊은 후배, 또 여성 후배들이 올라갈 수 있도록 파이프라인이 새지 않게 하는 게 내 역할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조직문화 개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로 황 상무보는 ‘리더의 의지’를 들었다. 리더라면 승진과 출세의 방식을 투명하게 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럴수록 건전한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본다. 그리고 그 과정을 되짚어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말은 SC제일은행엔 그런 리더가 있어서 과정과 시스템이 탄탄해져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느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