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대문에서 여성의류와 잡화를 도매로 구매해 온라인쇼핑몰에서 파는 사업자 김모(여ㆍ42) 씨는 인터넷상 KC(국가통합인증마크)인증 표기가 1년간 유예됐다는 말에 안심했다. 하지만 여전히 KC인증 검사를 받지 않으면 불법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허탈했다.
김 씨는 “인증 검사 자체가 유예된 것이 아니어서 경쟁 업체에서 신고를 했을 때 원부자재 시험성적서가 없으면 불법으로 과태료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며 “서로 다른 소재면 다른 모델로 보고 각각 시험 검사를 받아야 하고 지퍼나 액세서리 등 부자재들도 마찬가지여서 영세 사업자들에게 KC인증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하소연했다.
전기용품과 생활 공산품의 안전관리 제도를 하나로 통합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이 지난달 28일 시행된 가운데 이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안법은 옥시 가습기 사태 등을 거치며 커진 ‘소비자 안전 관리’ 요구를 반영했다.
주요 내용은 △전기용품 외에 의류ㆍ신발 등 생활용품 제조자도 제조에 사용된 원단 등 재료의 안전성 시험성적표 같은 ‘공급자적합성확인’ 증빙서류를 보관하도록 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판매 상품에 대해 인증정보(KC 인증마크, 인증번호 등)를 표기ㆍ게시하도록 하고 △해외 직구 구매ㆍ배송 대행업체도 동일한 해당 제품이 국내 시장에서 KC마크를 부착한 채 판매ㆍ유통되고 있음을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게 표시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인증 검사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영세 사업자들의 반발이 거세자 소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법 시행이 임박한 지난달 26일 일부 핵심조항을 1년 추가 유예하기로 했다.
법 시행 초기에 인증정보를 확보하기 어려운 판매자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생활용품 중 공급자적합성확인제품에 대해서는 올 연말까지 인증마크를 게시하지 않아도 판매 가능하도록 하고, 생활용품의 제조ㆍ수입업자 관련서류(제품설명서, 시험결과서 등)의 보관 의무도 올해 연말까지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생활용품 중 공급자적합성제품 중 의류 등 생활용품 41종에 대해서만 인증마크 게시와 관련 서류 보관 의무를 올해 말까지 유예한 것으로 전기용품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문제는 KC인증마크를 게시하지 않아도 되지만 검사 인증은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영세업자들의 비용 부담 문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셈이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의류 등 안전품질표시대상 제품이 공급자적합성확인제도로 명칭이 변경되나 시험 여부에 대해서는 변동이 없다”고 말했다. 기존에도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상 시험 인증을 받도록 규정돼 있었기 때문에 새롭게 규제가 강화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현재 대상 중 시험을 받지 않은 비율이 절반에 가까운 40 ~ 50%에 이를 정도로 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강행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전안법 시행으로 구매대행ㆍ병행수입 업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구매대행의 경우 적은 수수료를 취하고 구매를 대행해 준 다음, 실제로 해외에서 바로 고객에게 물건이 배송되므로 대행업자들이 상품을 직접 보지 못함에도 인증을 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온라인쇼핑협회 관계자는 “구매대행은 재고를 확보하지 않은 서비스이다 보니 인증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다”며 “정부가 이런 서비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법이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아마존이나 이베이 등 해외 쇼핑몰에 대해서는 전안법이 적용되지 않아 국내 업체와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있다. 소비자가 직접 아마존이나 이베이에서 구매하는 것은 무방비로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 협회 관계자는 “기존에도 법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사업자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의류나 잡화, 액세서리가 KC인증을 받아야 되는 제품이었는지 몰랐던 사람도 상당히 많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구매대행ㆍ병행수입 업체 커뮤니티인 글로벌셀러창업연구소는 '전안법이 헌법을 보장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로 이르면 이달 안에 헌법소원을 낼 예정이라고 1일 밝혔다. 글로벌셀러창업연구소는 구매대행ㆍ병행수입 업자 4만5000여 명을 회원으로 둔 단체다.
인터넷에는 ‘전안법 폐지를 위한 모임(전폐모)’이 발족됐고, ‘전안법 반대 서명운동’에는 하루 만에 1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