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디트스위스가 상기시킨 스위스銀 비밀주의...빗장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입력 2017-04-0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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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넘게 전세계 부호들의 비밀금고 역할을 해온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가 다시 도마에 오를 조짐이다. 그 신호탄은 크레디트스위스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5개국 당국이 고객의 탈세를 도운 혐의로 크레디트스위스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 5개국 당국이 스위스 사법당국의 허락도 없이 크레디트스위스의 일부 사무실을 급습하면서 사태가 국가간 갈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스위스는 2010년에도 국제사회로부터 비밀주의 원칙을 깨라는 압박을 받고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미국 국세청(IRS)이 스위스 은행들을 압박한 끝에 최대 은행인 UBS로부터 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미국인 4450여명의 명단을 넘겨 받았고, 이후 독일 영국 정부도 자국민 명의의 계좌에 접근할 수 있도록하는 협정을 스위스와 체결하면서 비밀주의 원칙이 깨지는 듯했다.

그러나 5개국 당국이 지난달 30일 탈세와 돈 세탁 혐의로 스위스 2위 은행 크레디트스위스를 정조준하면서 스위스 은행들이 다시 긴장하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고객의 세무와 관련해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사무실에서 당국과 접촉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조사가 워낙 비밀리에 진행된 탓에 스위스 당국조차 몰랐다고 한다. 이번에 공동 조사를 제안한 네덜란드 당국은 관련자 2명을 구속하고, 탈세 또는 돈 세탁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괴, 그림, 보석 등을 압류했으며, 스위스 계좌에 수백만 유로를 숨긴 혐의로 수십명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크레디트스위스의 일부 사무실을 각국 당국이 급습한 것과 관련, 해당 은행 뿐 아니라 스위스 사법당국에까지 치명상을 입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위스 당국은 UBS에 근무했던 브래들리 버켄펠드가 자신이 근무할 당시 수많은 미국인의 탈세 방조를 도왔다고 폭로했을 때 국제사회의 요구에 협조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번에는 크레디트스위스 급습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에 나설 것으로 블룸버그는 전망했다. 스위스 금융시장 감독기관인 FINMA는 4일 오전 9시 30분(한국 시간 이날 오후 4시 30분)에 연례기자 회견을 열 예정이다. 기자회견에서는 3월 30일 런던과 파리, 암스테르담에서 있었던 수색에 관련된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5일에는 스위스 검찰총장이 베른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블룸버그는 일련의 수사가 스위스 은행의 탈세 방조를 둘러싼 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움직임인지, 아니면 상황이 더 커질 조짐인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메인퍼스트의 다니엘 레글리 애널리스트는 “오래된 이슈를 다시 상기시키는 것이며, 크레디트스위스의 평판에 좋지 않다. 크레디트스위스가 이미 버렸을 과거의 상관행을 둘러싼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크레디트스위스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최악의 시기가 지나고 사업 재건에 총력을 기울이는 와중에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탈세와 돈세탁 혐의로 다시 조사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상황이 더욱 악화하면 크레디트스위스는 지난 5년 새 3번째로 증자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티잔 티엄 최고경영자(CEO)는 주식 발행 또는 스위스 부문의 일부 기업공개(IPO)도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티엄 CEO는 지난 2월에 금융위기 당시 모기지담보부증권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53억 달러를 벌금으로 내면서 미국 당국과 화해했는데 다시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맥쿼리그룹의 피어스 브라운 애널리스트는 “크레디트스위스에 대한 문제는 이번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자신도 모르는 것 같다는데 있다”며 “거액의 벌금이 부과될지, 아니면 이번 일로 고객들이 불만을 품고 크레디트스위스에서 자금들을 빼내갈지 이 두 가지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사태로 다시 불거진 스위스 은행들의 비밀주의는 프랑스 부르봉왕조의 루이 14세 때부터 시작됐다. 루이 14세가 1685년 신교도의 자유를 보장하던 낭트칙령을 폐지하면서 프랑스 위그노 신교도들 다수가 스위스로 건너가 은행업을 시작한 것이 스위스 은행업의 뿌리다. 루이 14세는 프랑스 국경 확장을 위한 자금을 스위스 신교도들에게 빌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그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이들에게서 자금을 빌렸는데, 이것이 스위스 은행 비밀주의의 시초다. 이후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 귀족과 부호들이 스위스의 은행을 이용하면서 비밀주의는 더욱 강해졌고, 1930년대 나치정권이 스위스 은행에 유대인 명의 계좌 정보를 요구했을 때 스위스 정부는 이에 거부하며 비밀주의 원칙을 명문화했다.

이는 스위스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원동력이 됐지만 반면에 탈세, 돈 세탁 같은 비리의 온상이라는 오명도 따라붙었다. 결국 국제사회가 조세회피방지협약을 체결, 스위스 은행에 세계 각국의 압박이 강해지면서 비로소 비밀주의의 빗장도 일부 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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