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리 서울예술대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 한국뮤지컬산업연구소 소장
“천재세요!”
뮤지컬 ‘드림걸즈’의 개막 공연 직후의 일이다. 모두 무대를 향해 감탄과 환호를 보내고 있을 때 한 관객은 객석에서 일어서는 신춘수 프로듀서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흔하지 않은 광경인데 그 관객은 뮤지컬의 구상에서부터 기획, 공연 완성도에 흥행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프로듀서임을 알았던 것이다.
뮤지컬 ‘드림걸즈’는 1960년대에 미국에서 활동했던 전설적인 흑인 R&B 여성 그룹 슈프림스를 모델로 한 쇼 비즈니스 세계의 이야기이다. 자연히 음악은 R&B와 소울이 농축돼 있어 배우들에게 그 특유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 과제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공연의 캐스팅은 신춘수 프로듀서가 직접 브로드웨이 오디션에 참여해 선발한 흑인 배우들이기에 그야말로 소울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무대를 선보였다.
아마도 그 관객은 한국에서 맛본 오리지널의 진수가 만족스럽고 한결 글로벌해진 우리나라 뮤지컬시장을 실감하며 이런 기획을 선사한 프로듀서를 향해 찬사를 보냈을 것이다.
최근 많은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 장르별 전문 출연진을 프로듀서라 지칭한다. 주로 심사나 평가, 어떤 프로젝트를 창조적으로 기획 수행하는 역할이다. 프로듀서라는 역할이 그만큼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듀서의 사전적인 정의는 한마디로 생산자 또는 제작자다.
세계적으로 문화산업 분야가 발달하고 분야 내 가치 사슬이 분화되면서 프로듀서의 역할이 전문화되고 명확해져 왔는데 아직 장르별로 역할 개념은 좀 차이가 있고 연출과 작곡 등의 창작자를 겸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분야든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생산)하기 위해 소재와 콘셉트를 구상하고 제작비를 마련하고 창작자들과 스태프, 배우를 선정하고 콘텐츠 완성도를 책임지고 유통 배급하는 역할은 가장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프로듀서의 역할이다. 그래서 프로듀서를 달리 말하면 콘텐츠의 권리자,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친근한 프로듀서 용어인 방송 PD와는 다른 개념이다. 신원호 PD, 장태유 PD, 김원석 PD 등 요즘 잘 나가는 그들은 엄밀하게는 연출가(Product Director)들이다. 물론 나영석 PD처럼 아이디어 구상에서부터 기획, 연출까지 다 하는 경우도 있지만 특별한 모델이고 그가 보여주는 행보는 방송 프로그램 연출가에서 나아가서 사회문화현상을 주도하는 사회학자의 경지로 보인다.
프로듀서는 한 콘텐츠의 창조자이기도 하지만 한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기도 한다.
1990년대 초반 충무로를 벗어나 새로운 한국 영화를 개척했던 젊은 영화 전문 프로듀서들이 나타나면서 영화인들이 이제는 스크린 쿼터제와 외화 직배 반대를 부르짖으며 삭발 투혼을 하지 않게 됐다. 전문 프로듀서들이 사회 트렌드 분석과 신선한 기획력으로 한국 관객 정서에 맞는 한국 영화의 재미와 질적 향상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한국 뮤지컬시장도 1990년대 중반까지 해외 뮤지컬을 라이선스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고 국내 공연하는 풍토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삼성영상사업단을 통해 해외 라이선스 비즈니스 경험과 해외 전문 스태프와의 협업을 거치면서 뮤지컬 전문 프로듀서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한국 뮤지컬시장은 연극 공연 예술과 결별하며 빠르게 대형화, 전문화, 산업화의 물살을 탔고 독자적인 뮤지컬산업 시장을 키웠다.
그래서 어느 분야든 프로듀서들은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개척적인 도전을 하고 감각과 안목을 보유하고 맹렬한 추진력을 발휘해야 한다.
뮤지컬 ‘드림걸즈’의 신춘수 프로듀서를 향해 “천재!”라고 부르짖은 관객의 발언은 합당했다. 신춘수 프로듀서는 한국 뮤지컬시장을 개척하고 발전시켜 온 프로듀서 중에서도 뮤지컬 본 고장 브로드웨이를 향해 골리앗에게 짱돌을 던지는 다윗이 돼 왔기 때문이다. 무모한 도전이고 투자일 수 있는 긴 세월이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 관객들은 그가 제작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드림걸즈’에서 동시에 외국 배우들의 장기 공연을 자막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프로듀서에 의해 한국 뮤지컬시장의 풍토가 또 바뀌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