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이는 존중할 수밖에 없는 아이였어요.”
지난해 ‘혼술남녀’의 조연출을 맡았던 고(故) 이한빛 PD의 죽음이 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그의 어머니 김혜영 씨는 아들의 죽음을 차마 받아들일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그런 김 씨가 비즈엔터와 단독 인터뷰를 통해 어렵게 입을 뗐다. 고인이 된 이한빛 PD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이런 비극적인 일이 벌어진 건지, 담담하면서도 때로는 격앙된 어조로 풀어냈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가 혹여 아들에게 누가 될까 걱정했다.
지난해 10월 26일, 28살이던 이한빛 PD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CJ E&M에 PD로 입사해 첫 조연출로 tvN 드라마 ‘혼술남녀’ 팀에 합류한 건 지난해 4월 18일. 발령을 받고 6개월여 만에 주검으로 발견됐다.
유족들은 해당 사건을 종영 후 6개월이 지난, 그리고 고 이한빛 PD가 ‘혼술남녀’ 조연출로 합류한지 꼭 1년째가 되는 지난 4월 18일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CJ E&M 측에 진상 조사, 재발 방지 등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고, 결국 6개월의 준비 끝에 간담회를 열었다.
CJ E&M 측은 해당 사건의 진상 규명을 경찰조사로 진행하고자 했다. 개개인의 가해 행위를 따지려 면 경찰 조사를, 회사와의 연관성을 찾으려면 내부 조사를 해야 한다는 것. 이에 반해 유가족들은 회사와 함께 진상조사위원회를 마련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고 이한빛 PD의 죽음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에 경찰조사는 의미가 없다고 본 것이다.
CJ E&M 측은 지난 18일 늦은 저녁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동시에 경찰조사를 고수한다는 방침이다. CJ E&M의 한 관계자는 “우린 처음부터 경찰조사를 이야기했다. 유가족 측은 고인의 주변 동기들과 인터뷰를 하고 싶어 하나, 주변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 만큼 함께 일한 사람들도 패닉 상태였다”면서 “소모적이지 않게 경찰조사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유가족은 우리와 다른 뜻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CJ E&M 측과 유가족은 왜 같은 뜻을 보일 수 없었던 걸까.
◆ “아들, 성실하며 사회적 약자 배려하던 사람”
김혜영 씨는 항상 고인을 ‘존중’했다고 표현했다.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고도 덧붙였다. 교사인 김 씨는 아들에 대해 “항상 성실했으며 사회적 약자를 배려했다”고 회상했다.
“정말 참한 아들이었으니까요. 너무 존중해서 독립적으로 놔둔 것 같아요. 그게 그 아이가 죽음을 선택하게 만든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 지금 너무 죄책감이 많이 들어요. 하지만 저는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고인이 PD라는 직업을 결정하게 된 것도 사회적 약자에 지속적으로 보여 왔던 관심이 영향을 끼쳤다. 고인이 대학교 2학년 때, 김 씨에게 PD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 이유를 묻자 고인은 이렇게 답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편의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잖아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어서, 사회에 따뜻한 메시지를 던져서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싶어요.”
◆ “문제는 시스템의 부재…입사 후 바빠서 얼굴 볼 시간도 거의 없어”
고 이한빛 씨는 목표한 바를 이뤘다. 지난해 1월 18일, CJ E&M에 PD직으로 입사하게 된 그는 내부 교육과정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4월 18일 ‘혼술남녀’ 팀으로 뒤늦게 합류했다. 어머니 김 씨는 그 후로 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토로했다. 바쁜 업무 탓이었다.
“나중엔 집에 들어와도 40분 있다가 깨워 달라 할 때도 있었어요. 새벽 2시에 들어와서도 2시간 뒤에 나가야 한다고 그랬고… 너무 바빠서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어요. 맞벌이를 하는 터라 아침을 차려놓고 나가도 저녁 때 와서 보면 못 먹은 채로 급하게 나간 게 집에서 다 티가 나요. 얘가, 대학교 입시를 준비할 때도 이런 적은 없었거든요.”
김 씨는 ‘이게 아니다’ 싶은 생각이 그때 처음으로 들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아이의 꿈을 이룬 것인 만큼, 또 아들을 존중했던 만큼 뭐라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잠깐씩 마주할 수 있었던 아들은 “회사가 돈을 너무 아끼려고 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아르바이트생을 써야할 곳도 쓰질 않았대요. 촬영을 위한 교통통제도, 소품 하나 놓는 것까지도 다 한빛이가 했다고 들었어요. 아르바이트생을 한두 명 정도 고용하면 그분들이 그 일을 맡고 조연출들은 작품이 연출되어가는 과정을 봐야하는데 그러질 못한 거죠. ‘CJ는 돈 많은 곳 아닌가? 왜 이런 식으로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잠 잘 시간도 없이 일을 한 거죠. 하루에 2교대 하고, 현장근무 후 쉬는 날에도 회사에 출근해 내근으로 일을 했어요. 회사 영수증 처리까지도 모두 한빛이의 몫이었어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 “아들의 죽음, 지금도 믿기지 않아…시간 멈춘 듯 살았다”
그렇게 얼굴을 제대로 못 보던 날들이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21일, 촬영을 위해 집을 나선 아들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김 씨는 회사 측이 4일 뒤인 25일 김 씨의 직장에 연락을 취해 무단결근 사실을 알려와 그제야 아들의 실종을 알았다. 경찰에 신고한 뒤 그 다음날인 26일, CJ E&M을 찾아갔다. 그때부터 김 씨는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5일이나 연락이 안 됐던 거잖아요. 불안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와 그때 만났던 인사팀 직원 외에 선임 PD를 직접 만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전날 종방연이 있었다더라고요. 술 마시고 파티를 해서 늦게 들어갔대요. 하지만 거기에 한빛이는 없었던 거잖아요. 그런데도 아무도 찾을 생각도 안 하고 부를 생각도 안 하고, 궁금해 하지도 않았던 거죠. 1시간 정도 기다려서 선임 PD를 만났는데, PD가 한 시간도 넘게 한빛이가 얼마나 불성실했고 나쁜 사람이었는지를 말하면서 계약직을 무시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고는 대수롭지 않게 ‘잠수했나봐요 아마. 그만두려고 했나보죠’라는 식으로 말했어요.”
김 씨는 일단 사과는 했지만 이상함을 느꼈다고 했다. 27년 동안 자신이 보아온 아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CJ E&M 측과의 면담이 끝난 뒤, 김 씨는 귀가하던 중 아들의 비보를 듣게 됐다. 김 씨는 아들의 죽음이 지금까지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눈물을 쏟았다.
아들이 죽고 6개월 동안 김 씨는 시간이 멈춘 채로 살았다고 회상했다. 고인이 노트북에 남긴 유서를 본 뒤 김 씨는 아들이 혼자 좌절해 죽은 게 아닌, 죽을 수밖에 없던 코너까지 몰렸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사실 거기서 자기만 뛰쳐나오면 되는 거잖아요. 하지만 하나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자기 혼자만 빠져나오는 게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나만 살겠다고 나오는 게 안 됐던 거죠. 그래서 아이가 그런 결정을 한 것 같아요.”
김 씨는 대기업인 CJ E&M을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승산 없는 싸움인 걸 알지만, 싸우지 않으면 한빛의 죽음이 너무나 왜곡되고 잘못될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김 씨에 따르면, CJ E&M 측은 유가족이 보낸 질의서에 대해 고인이 성격에 문제가 있어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다는 식의 답변을 보냈다. 결국 그는 한빛의 장례식장에서도 CJ E&M으로부터 온 조문객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리고 CJ E&M 측에 두 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첫째로 아들의 죽음을 매도시킨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했어요. 한빛이가 평소에 조금이라도 불성실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겠지만, 항상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던 아이가 계약직을 무시했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요. 둘째로는 제작현장 시스템을 개선하라고 했어요. 한빛이와 같은 또 다른 젊은이의 희생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했어요.”
김 씨는 고인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한 가지 일화를 전했다. ‘혼술남녀’ 촬영팀이 갑자기 교체가 되며 고인이 선지급금을 환수하는 일을 맡았다는 것. 그 돈으로 전세금을 낸 사람이 있을 정도로 큰 금액이었기에 난감했지만 촬영팀 중 한 사람은 고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도 너는 공채니까 괜찮아.” 이 말에 고인은 어머니 김 씨에게 시스템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런 만큼 김 씨는 아들이 계약직을 무시했다는 사측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 “원하는 건 오직 두 가지…사과와 현장 시스템 개선”
결국 진상규명을 위해 본격적인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구성됐다. 하지만 김 씨는 이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질 못했다. 아들의 죽음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에 아버지 이 씨와 고인의 동생 이한솔 씨가 대책위 일을 도맡았다.
최종적으로 이들은 지난 18일을 간담회 날로 확정했다. 그 날은 꼭 1년 전 고인이 ‘혼술남녀’ 팀에 배치된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간담회를 며칠 앞둔 날, 고인의 아버지 이 씨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대책위 일에선 한 발짝 물러선 김 씨였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면에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같은 결정엔 둘째아들 한솔 씨가 큰 힘이 됐다. 두려움을 느꼈지만 다수의 사람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용기를 냈다. 간담회를 마치자 김 씨는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고 털어놨다.
김 씨는 현재도 CJ E&M에게 장례식 때 말했던 두 가지 요구사항만을 바라고 있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호도한 것에 대한 공개사과와, 시스템 개선을 통한 행복한 일터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젊은 아이들의 꿈을 막아선 안 된다”고 강하게 말했다. 나약해서가 아닌, 그야말로 세상이 너무해서 젊은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저는 오히려 간담회 이후로 마음이 편해요. 이제 회사가 어떻게 나와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할 거예요. 제가 죽는 그 날까지도 한빛이의 죽음이 던지는 메시지를 다 전할 거예요. 아들에 대한 책도 꼭 내서 사회에 화두를 던질 거예요. 물론 또 다른 이슈가 생기면 이번 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는 거 다 알아요. 세상은 다 그렇잖아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저는 거대하게 싸울 수는 없어도 제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