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현대경제연구원장
그런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불리던 소위 ‘3철’이 언론에 문자까지 보내며 공식적으로 퇴장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특히 실세로 꼽히던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의 경우, 언론에 보낸 문자에 “문 대통령 당선으로 나의 임무는 끝났다. 그의 곁을 떠난다”는 짤막한 인사와 함께 아예 해외로 출국해 추가적인 논란을 잠재우려는 모습을 보였다. 소위 ‘공성신퇴(功成身退)’, 즉 ‘공을 이루고 나면 몸은 물러난다’는 고사성어에 충실한 몸가짐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어떻게 그 정부가 잘못될 수가 있겠는가? ‘공성신퇴’라는 사자성어는 ‘노자 도덕경(老子 道德經)’에 나오는 글귀이다. 노자 제9장을 보면, “지니고 있으면서 가득 채우려는 것은 그만두는 것만 못하고, 갈고 갈아 날카롭게 만들면 오래 쓰기 힘들다. 집에 금과 옥이 가득하면 지키기가 어렵고, 부귀를 누리게 되어 교만하게 되면 자신에게 화근을 남기는 법이다. 공을 이루게 되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功成身退,天之道也]”라는 글귀가 나온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지만 이것을 실천에 옮긴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중국 역사상 공성신퇴를 실천한 예로 꼽히는 인물이 바로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재상이었던 범려(范?)이다. 월나라는 오(吳)나라와 국가의 존망을 건 사투를 수십 년간 벌였다. 흔히들 와신상담(臥薪嘗膽)으로 알려진 고사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월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에 성공해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키며 중원의 패자(覇者)로 올라서게 된다.
당시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두 명의 신하가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범려와 대부(大夫) 문종(文種)이었다. 그런데 본격적 권세를 누려야 할 시점에 범려는 외려 월왕 구천(句踐)에게 작별을 고한다. 구천이 펄쩍 뛰면서, “나와 함께 있으면 나라를 반으로 나눠 줄 것이로되 만일 끝내 떠나고자 한다면 베어버리겠다[孤將與子分國而有之。不然,將加誅于子]”는 극언까지 하지만 범려는 “군주는 자신의 명령을 행하지만, 신하는 자기의 희망을 행할 뿐입니다[君行令,臣行意]”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러면서 대부 문종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의 편지를 남긴다. “하늘에 새가 다하면 좋은 활도 창고에 넣어 두게 되고,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겨 죽는 법[蜚鳥盡,良弓藏;狡?死,走狗烹], 게다가 폐하의 상은 목이 길고 입은 새 부리처럼 생겼으니, 이런 인물은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소. 그대는 어째서 떠나지 않는 것이오?”
바로 ‘토사구팽(?死狗烹)’이라는 고사성어를 낳은 명구절인데, 문종은 이 편지를 받고도 물러나지 않았다. 결국 월왕 구천은 문종에게 촉루검(屬鏤劍)이라는 명검을 보내는데, 문종은 이 검이 바로 과거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오자서(伍子胥)를 자결케 할 때 보낸 검인 것을 알고는 탄식하며 자결을 하였다는 고사이다.
그런데 이 범려의 경우도 사실 순수한 의미에서 모시던 주군의 성공만을 바라고 물러나는 모습은 아니다. 의심 많은 주군에 의한 후환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주위 인물들의 공성신퇴는 일단 순수하다고 믿고 싶고, 그런 점에서 성공할 대통령의 좋은 조짐이길 진심으로 바라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