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적자’ 한전을 경영 정상화 시킬 수 있었던 것은 공직·민간기업 등 다양한 경험이 힘 돼
유난히 심했던 미세먼지가 걷히고 맑은 하늘과 뭉게구름을 볼 수 있었던 24일 나주혁신도시에 있는 한국전력 본사에서 조환익 한전 사장을 만났다.
한전은 2012년 조 사장의 취임 이후 5년 연속 적자에서 벗어나 2013년 흑자로 전환했고, 부채 비율도 2012년 말 133.2%에서 지난해 말 89.9%로 감소했다.
공기업 사상 첫 재연임에 성공한 조 사장은 한전에서 롱런할 수 있었던 배경을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조 사장은 공직생활에서 얻은 노하우와 다년간 여러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이 한전을 이끌어 가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행시 14회로 공직에 입문해 상공부를 거쳐 산업자원부 차관을 지낸 그는 공직생활 내내 통상과 수출 분야에 몸담았다. 이후 수출보험공사, KOTRA, 한전까지 ‘빅3’ 공기업 사장을 지냈고, 과거에는 민간 기업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다.
그가 처음 한전 사장으로 왔을 때, 대정부 관계를 원만하게 풀면서도 경영 체질을 개선하고 누적 적자를 해소해야 하는 등 산적한 과제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공공성이 강한 한전에서 동시에 민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조 사장은 “과거 상공부는 부처 중에서도 돈을 버는 부처였다. 돈을 버는 일을 만드는 생태계 속에서 공공 업무를 했던 경험이 공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이야기했다.
조 사장은 어느 조직이든, 그 조직에 들어가면 ‘뼈를 묻는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임기를 채우겠다는 생각으로는 조직의 혁신과 통합은 요원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조 사장이 취임한 이후 취임식에서 IBM의 거스너 CEO가 “나는 IBM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나는 IBM과 사랑에 빠졌다”고 표현한 것을 인용하며 한전과 사랑하러 왔다고 언급한 것이 직원들에게 파격 그 자체였고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처음 CEO가 되면 조직을 안정시키기 위해 전 직원이 참석하여 토론하는 워크숍을 하지만, 조 사장은 지금까지 한 번도 워크숍 행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직원과의 신뢰를 쌓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또한 직원이 배가 고프면 안 된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이익을 내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모은 아이디어의 결과물이 ‘빛가람 에너지밸리’이다. 조 사장은 이를 미국의 정보통신(IT) 산업 집적지인 실리콘밸리, 영국의 에너지 도시인 캠브리지 사이언스 파크와 같은 창조산업 집적지로 만들어 간다는 구상이다.
조 사장은 매년 직원들에게 한 개의 핵심 구호를 제시한다. 지난해는 ‘보합대화(保合大和)’를 제시해 직원의 협력과 화합을 도모했고, 올해는 ‘물은 웅덩이를 만나면 다 채우고 나아간다’는 뜻의 사자성어인 ‘영과후진(盈科後進)’을 제시했다. 한전이 안팎으로 어려운 경제상황을 보듬고 내실을 기하면서 에너지 생태계의 모든 곳을 채워 나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글을 잘 쓰는 CEO로 정평이 난 조 사장은 2만 명의 직원들에게 에세이 형식의 편지를 종종 쓴다. 직원들의 마음을 추스를 수 있고, 나중에는 리더십에 대한 신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8기 일시적 가동 중단(셧다운), 노후 발전소 조기 폐쇄 등 새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에 대해 한전도 정부 정책에 맞춰 에너지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할 방침이다. 한전은 발전공기업과 함께 5년간 석탄화력발전으로 인한 미세먼지를 50%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 사장은 “발전소 내 설비를 조기에 보강하고, 미세먼지 계측을 정확하게 하면 발전 부문이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오해를 상당히 불식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국 미세먼지 배출에 있어서 발전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차로 생성되는 것까지 감안할 때 11% 정도”라고 설명했다.
한전은 영국 원전 컨소시엄 ‘누젠’의 지분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탈석탄’ 못지않게 ‘탈원전’도 새 정부의 주요 정책 방향 중 하나인 만큼, 한전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그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을 수주한 이후 전 세계에서 한국의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며 “전 세계 원전 건설의 총량이 줄어드는 상황으로 시장 자체는 활력이 없는 상황이지만, 미국·일본 등 경쟁국의 계속되는 원전 수출 부진이 오히려 한전에는 기회인 만큼 후속 원전 수출에 노력할 예정이다”라고 답했다.
조 사장은 장기적으로 원전에 의한 수급을 줄일 경우, 환경 비용 등 원가 변동 요인을 전기요금에 연동하는 전력구입비 연동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당장은 수급에 문제가 없지만, 장기적으로 원전이 퇴출하면 그 공백은 청정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될 경우) 전력 원가 연동제를 도입하는 등 전기요금 체계의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 사장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글로벌 에너지시장에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스마트그리드, 에너지저장장치(ESS), 마이크로그리드 등 에너지 신산업으로 ‘업(業)의 변화’를 추진하는 한전이지만, ‘발전과 판매’ 분리 원칙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할 수 없다. 이에 따라 한전은 정부가 인정하는 일부 사업에 한해 특수목적회사(SPC) 출자를 통한 간접투자 방식으로만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해오고 있다.
조 사장은 “석탄화력 감축에 따른 부족한 에너지원을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전력회사 차원의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필수적”이라며 산업계의 노력과 더불어 융합 시대에 걸맞은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조 사장은 “변혁의 시기에 1등의 자리를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틀을 깨는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며 “한전은 ‘업의 변화’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도를 위한 노력을 경주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 조환익 한전 사장은
조환익 한전 사장은 1950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행시 14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상공부 미주통상과장, 대통령경제비서실 부이사관,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 산업자원부 무역투자실장, 산업자원부 제1차관을 지냈다.
조 사장은 상공부 시절부터 통상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통상맨’이다. 2001년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겠다”며 산자부 차관보 자리를 스스로 물러나 관가에서 ‘아름다운 퇴장’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2004년 산자부 차관에 임명돼 1년 6개월간 근무했으며, 공직에서 물러난 뒤 한국수출보험공사(무역보험공사 전신) 사장과 KOTRA 사장을 역임한 데 이어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의 최장수 CEO로 재직 중이다.
한전은 지난해 포브스지 선정 세계 1위 전력회사로 이름을 올렸고, 세계은행의 기업환경평가 전기공급 분야에서 3년 연속 세계 1위를 달성했다.
한전은 2014년 본사 이전 이후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에너지밸리 조성 사업을 추진해 2020년까지 500개 기업 유치와 일자리 3만 개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까지 200개 기업과 에너지밸리 투자 협약을 체결했고, 누적 투자금액 8810억 원, 6086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거뒀다.
△1950년 서울 출생 △중앙고·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73년 행시 14회 △1992년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1998년 산업자원부 무역투자실장 △2001년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2004년 산업부 차관 △2007년 수출보험공사 사장 △2008년 KOTRA 사장 △2012년부터 현재 한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