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어릴 때 들은 피죽 이야기

입력 2017-06-1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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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너무 가물고 덥다. 비가 오지 않으니 논밭의 곡식뿐 아니라 들판의 풀들도 확실히 예년보다 무성해 보인다. 모를 내지 못한 논도 있다고 하고, 어떤 곳은 먼저 낸 모가 모두 말라 죽어 다시 모를 낸 곳도 있다고 한다. 국민총생산 가운데 논농사나 밭농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으니 망정이지 국민의 절반 이상이 농민이었던 시절 같으면 전 국가적으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지금은 곡물 중에서 제일 흔하고 값이 싼 게 쌀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농사의 중심은 벼농사가 아니겠는가. 쌀이 남아돌아 묵은 쌀이 쌓여 처치 곤란이라 하여도 우리에게 쌀은 그냥 일용할 양식으로서만이 아니라 예부터 의식주 가운데서도 첫손에 꼽히는 삶의 상징과도 같은 품목이다.

‘집이 하늘’이라거나 ‘옷이 하늘’이라는 말은 비유가 어색해도 ‘밥이 하늘’이라는 말은 조금도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집과 옷을 목숨이라고 부를 수 없어도 밥이 목숨이라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그 자체로 우리 삶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게 날이 가물고, 논밭이 가물면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피죽 이야기가 생각난다. 일제강점기 시절 어느 해인가 가뭄이 심하게 들었는데, 산 아래 천수답들은 모내기 철에 비가 내리지 않아 모를 심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 같으면 한 해 논을 묵히고 말겠지만 그 시절에 한 해 농사를 작파하고 논을 묵힌다는 것은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그냥 앉아서 굶어 죽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는 없는 일이어서, 모내기 철이 지난 다음 마른 논에 살짝 비가 뿌릴 때 피 씨앗을 뿌렸다고 한다. 지금은 논에 뿌릴 만큼 많은 양의 피 씨앗을 구하기도 어렵지만 옛날에는 가뭄을 대비해 늘 피씨를 따로 두었다고 한다. 피는 벼과의 식물로 씨앗은 좁쌀처럼 자잘해도 줄기와 잎은 벼와 비슷하다. 가뭄에도 강하고, 마른 땅에서도 잘 자란다. 키도 벼보다 한 뼘은 웃자란다.

오히려 그런 탓에 피농사는 굶어 죽을 수 없어 짓는 농사라고 했다. 가뭄이 들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논에 피를 한 번 뿌리고 나면 그것이 그 한 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해 일기가 순조로워 다시 벼농사를 지을 때에도 온 논에 피가 올라와 벼가 피 속에 파묻혀 버리는 것이다. 다음 해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영향이 오륙 년 이어지기 때문에 정말 웬만해서는 뿌리지 않는 게 피농사라고 했다. 피농사를 한 번 지은 농토를 원래대로 돌리는 데만 이렇게 수년이 걸리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힘없는 사람이거나 힘없는 목소리를 말할 때 비유적으로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 사람처럼’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피죽을 먹어본 사람은 단 1퍼센트도 되지 않을 것이다. 먹어본 경험이 있다 해도 여든이 넘은 어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일 것이다. 흉년이면 피죽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멀겋게 물죽으로 끓여 먹었다고 했다.

피죽에 대한 글을 쓰는 나 역시 논밭에 잡초처럼 나는 피는 어릴 때부터 흔하게 봐왔어도 피로 지은 밥이나 피로 지은 죽을 먹은 경험은 없다.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날이 가물면 어린 시절에 들었던 그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 사람’이라는 비유를 지금도 흔하게 쓰면서 피죽이라는 말을 소나 돼지의 피를 넣어 끓인 핏죽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다. 보릿고개라는 말도 그렇다. 이 말 역시 낱말의 뜻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체험으로 안다면 일흔 가깝거나 넘은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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