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80. 남정일헌(南貞一軒)

입력 2017-08-2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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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철학에 심취한 조선의 마지막 여성문인

▲남정일헌의 묘소. 충남 아산시 도고면 농은리.

남정일헌(南貞一軒·1840~1922)은 조선의 마지막 여성 문인으로, 문집 ‘정일헌시집(貞一軒詩集)’이 있다. 시집에는 한시 65수와 제문 1편이 수록되어 있다. 한시 작품 65수의 내용은, ①친정 부모를 뵈올 수 없는 규방여인의 한계 ②시아버지와 시동생, 시누이와 주고받은 가족 간의 정 ③성리(性理)와 태극(太極) 등 심오하고 전아한 철학적 사유 ④양자에게 보내는 애절한 모정 ⑤자신이 살고 있는 간양리 사계절의 변화와 회포 ⑥신선세계를 동경하고 노니는 아득한 판타지 등등이다.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 한글가사 ‘남초가’, ‘권효가’, ‘노인탄가’, ‘규원가’와 ‘녈녀젼’, ‘쇼학집뇨’, ‘推추數슈法법’ 등의 친필 필사본도 전해진다.

정일헌은 세 살 때 한글을 깨우칠 정도로 영민하였다고 한다. 정일헌의 할아버지 남영주(南永周·1788~1856)는 날마다 한자 수십 자를 써서 벽에 걸고 정일헌에게 일과를 삼게 하였는데, 한 번 보면 곧 외웠다고 한다. 16세에 성대호와 혼인하기 전까지 유교의 경전과 역사서를 두루 섭렵하였다.

정일헌은 혼인한 지 4년 만에 남편이 죽는 비운을 맞았다. 이때 남편 성대호는 스물한 살, 정일헌은 스무 살이었다. 정일헌은 남편이 죽자 따라 죽으려 나뭇단에 불을 지르고 뛰어들었다. 그런데 정일헌의 시어머니 전의이씨(1811~1865)가 목격하고 불 속에 뛰어 들어가 며느리를 구출하였다. 정일헌의 시어머니는 아들이 죽고 난 뒤, 며느리가 자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었다고 한다. 불 속에서 며느리를 구해낸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껴안고 한없이 흐느끼며 통곡하였다.

시어머니로부터 구출된 이후, 정일헌은 유교 경서를 탐닉하고 유교적 여성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는 ‘정일(貞一)’이라는 자호(自號)에서도 드러난다. ‘정일’은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말이다. 뜻은 ‘정부일(貞夫一)’ 곧 사물의 변동은 무궁하나 마침내 하나의 이치(一理)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태극’이라는 시 한 편이 주목된다. “태극은 바로 만물의 근원 되나니, 염옹의 태극도설 지금까지 전해지네. 기(氣)는 천지의 형체 없는 밖에 운행하고, 이(理)는 음양이 나뉘기 전에 갖추어져 있지. 달빛은 온 시내 물 비추니 형상 가히 즐길 만하고, 수은은 천 개로 나뉘어도 형체 모두 둥글도다. 우리들 각각의 마음속에 태극이 있나니, 솟구치는 물의 근원 하늘처럼 넓고도 넓구나.”

정일헌은 ‘주역’에 심취한 조선의 마지막 여성철학자이며, 문학가이다. 성리철학과 다양한 장르의 문학창작과 향유. 그것이 그녀의 외로운 삶을 위로하고 풍요롭게 하였다. 갑오동학 때 불에 탄 초고가 끝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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